- 임진왜란·정유재란 7년의 해전
- 전황·개인사 직접 기록한 일기
- 국내외 유례 없고 문학성 탁월

- 고기 잡고 소금 팔아 식량 확보
- “살려면 죽고 죽으려면 살 것”
- 책 곳곳 뛰어난 지도력 묘사돼
- 전선서 노모 챙긴 효심도 절절

충무공이 탄 대장 판옥선이 전남 해남군 울돌목(명량해협) 소용돌이에 말려들려는 순간이다. 이를 본 우리 어민이 어선을 띄워 대장선에 밧줄을 걸어 수침을 막는다. 영화 ‘명량’ 중 한 장면.

임진년 한 해 전 전운이 짙었다. 1591년 1월 일본에 갔던 통신사(황윤길·김성일·허성)가 돌아와 3월 선조에게 정세를 아뢨다. 정사 황윤길(서인)은 “반드시 병화가 있을 겁니다”, 부사 김성일(동인)은 “신은 그런 걸 보지 못했습니다”며 엇갈린 의견을 낸 뒤 민심 동요를 우려하는 말을 덧붙였다. 당시 동인 입김이 세 황윤길 주장은 공론이 못 됐다. 그러면서도 선조는 비변사에 변방을 지킬 장수를 구하라고 명했다. 좌의정 류성룡이 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살아 잘 알던 이순신(李舜臣·정읍 현감·종6품)을 천거해 장군은 전라좌도 수군 절제사(종3품)가 됐다.

충무공은 임진년(1592)부터 무술년(1598)까지 7년간 진중일기를 썼다. 을미일기는 친필 초고본 없이 전서본(全書本)으로만 전한다. 전서본은 정조 때 친필 초고본을 풀어 간행한 ‘이충무공전서’를 말한다. 이때 ‘난중일기’란 이름이 붙었다. 난중일기(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또 다른 이순신 저서인 ‘임진장초’(장계 초본, 장계는 상부에 올리는 보고서), 편지글을 모은 ‘서간첩’을 아우른 3종 9책이 국보 76호(이충무공난중일기부서간첩임진장초)다.

전황이 급박하거나 투옥·모친상 같은 개인 사정으로 일기를 못 쓴 날도 제법 많다. 간지 날씨를 기본으로 적었다. 보통 때 일기는 군무 중심에 개인사를 보여준다. 진영을 오간 인적이 훤하다. 곤장 치기나 효수 같은 처벌을 기록한 대목에서 강직한 지휘관 자세가 읽힌다. 장군은 모함받아 파직되거나 백의종군하는 수모를 자주 겪었다. 일기 속 이순신은 소탈하다. 술 취한 타인을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자신이 술 마시고 넘어지자 일기에 그대로 적었다. 효자였다. 팔순을 넘긴 모친을 걱정하며 눈물 흘렸다. 편안을 확인하면 일기에 ‘幸幸幸(다행다행다행)’이라고 적으며 어린애처럼 기쁨을 나타냈다. 모친 상중에 육류를 끊었다. 선조는 정유년(1597) 12월, 전쟁하는 장수가 그래선 안 된다며 고기 음식을 내렸다. 건강이 좋지 않았다. 왜군 총탄에 관통상을 입은 후유증으로 내내 고통을 겪었다.

세상 물정에 어둡지 않았다. 병영 공방을 차려 부채를 만들어 인사치레로 썼다. 군사를 배불리 먹여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걸 잘 아는지라 군량미를 쌓았다. 둔전을 일구거나 고기를 잡고, 소금과 그릇을 구워 팔아 쌀을 사들였다. 유비무환 지도력.

난중일기는 임진왜란·정유재란 해전 전황을 장수가 직접 기록한 유일무이한 전쟁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 조선·일본·명나라가 치른 삼국 전쟁인 양란에서 이순신 함대가 제해권을 쥐고 왜구 북상을 저지한 전과는 혁혁하다. 세계 전쟁사에서 빛난다. 문학성도 뛰어나니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 당대 정치·사회상도 담긴 알찬 역사 기록.

■ 임진일기(1592년)

조선 수군이 운용한 전선. 귀갑선(위)은 대포가 장착돼 화력이 셌다. 판옥선은 혼전에 유리하였고 원거리 공격에 주로 썼다.

임란 첫해라 해전이 거셌다. 첫 승리인 옥포해전(5월 7일)부터 부산포해전(8월 29일~9월 1일)까지 10여 주요 해전에서 이겼다. 임란 터지기 전 3개월 치 일기는 ‘유비무환’ 그 자체다. 왜구 침략 대비가 철저하다. 임무에 소홀한 자는 곤장치고, 충무공과 부관들은 거의 날마다 활을 50~90회 쏘았다. 성벽·해자·무기를 정비하고, 바닷물 속에 쇠사슬을 쳤고, 귀선(龜船·거북선)에 대포를 들여 선봉에 뒀다.

2월은 아직 여유롭다. 사냥을 구경하다가 군관이 모두 일어나 춤을 추고 부관 조이립은 절구시를 읊었다(12일). 충무공은 원래 글 잘 짓는 문인이었다. 백야곶(여수 화양)에 순찰 갔을 때다. “비 온 뒤 산 꽃이 활짝 피었는데 경치를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19일) 전쟁문학 백미다. 드문드문 나오는 편지글, 심금을 울린다.

3월 일기에선 전선에서 노모를 챙기는 효심이 절절하다. 그는 평소 공부하는 지휘관이었다. ‘증손전수방략’이라는 병서를 읽으며 수전 육전 화공을 익혔다. 이달 27일 귀선 발포 시험 대목이 나온다.

4월 12일 귀선을 다 만들었다. 임란 발발 하루 전. 15일 왜구의 부산포 상륙을 알게 된다. 16일 부산 거진(巨鎭) 함락을 보고받았다. “분하고 원통함을 참을 수가 없다.” 27일 출전 명령이 떨어졌다. 5월 7일 옥포해전이다. 조선 수군 전선 80여 척이 왜선 30여 척을 급습해 26척을 깨뜨렸다. 연전연승의 전술이 드러난다. 적보다 전력이 확실히 앞설 때 급습하기. 사천 용현 선진리 앞바다에서 처음으로 거북선을 띄워 왜구를 족친 사천해전. 29일 치 일기가 그 현장을 전한다. “…여러 장수를 독려해 일제히 달려들어 화살을 비 퍼붓듯이 쏘고, 각종 총통을 우레같이 난사하게 하니, 적들이 무서워 후퇴했다. 화살을 맞은 자가 몇백 명인지 알 수 없고, 왜적의 머리도 많이 베었다.” 조선 군함 26척이 왜선 13척을 부수었다. 여기서 적탄이 충무공 왼쪽 어깨에 박혔는데도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썼다.

6월 11일~8월 23일 일기가 끊겼다. 당포·당항포·율포·한산도·안골포 해전을 벌였던 기간. 일기는 8월 24일 다시 시작돼 28일까지 이어지다가 연말까지 보이지 않는다. 편지를 보면, 전화(戰禍)를 입은 가구의 병역 면제 조치로 병사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져 충무공 고민이 깊다.

■ 계사일기(1593년)

2월부터 일기가 시작된다. 원균(경상도 수사) 짓거리에 거듭 통분한다. 원균은 백성 머리를 잘라 적군을 벤 양 거짓 보고를 올렸다. 병졸이 툭 하면 달아나고, 전라도 관찰사·원수가 수군 곳간을 털어간다는 충무공 하소연이 씁쓸하다. 정철 총통을 만들고, 소금·그릇을 만들어 팔아 군량을 사들였다. 갑오년(1594)에는 당항포(2차)·장문포 해전에서 왜구를 무찔렀다. 을미년(1595) 병신년(1596)엔 해전이 거의 없었다.

■ 정유일기(1597년)

초서체로 쓴 난중일기 본문.

임란 휴전이 깨지자 1월 가토 기요마사가 다대포로 쳐들어와 정유재란이 일었다. 원균이 경상우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가 된다. 충무공은 3월 4일 출동하라는 선조 명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투옥돼 28일간 옥고를 당한 후 4월 1일 풀려난다. 정유일기는 이날부터 시작됐다. 8월 3일 복직되기까지 120일간 백의종군이 보인다. 모친이 별세(4월 11일)하고, 원균은 칠천량해전(7월 15~16일)에서 패해 도망가다 적 손에 죽었다.

9월 삼도수군통제사에 복직한 이순신은 육지에서 싸우라는 어명을 받자 “신에게 아직 12척 전선이 있으니 죽을힘을 다해 싸우면 할 수 있다”는 장계를 올렸다. 9월 15일 우수영에서 “살려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면 살 것이다(必死則生 必生則死)”고 병졸을 독려한 후 16일 명량(울돌목)대첩을 이루었다. 우리 전선 13척은 왜선 133척을 상대해 이 중 31척을 깨트렸다.

무술일기(1598)를 보면, 왜구가 발을 뺀다. 1월 명나라 군대가 도착하자 2월에 섬나라에서 화친을 구한다. 8월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왜구는 철수를 서둘렀다. 11월 19일 노량해전, 이순신이 적탄을 맞았다. “전쟁이 한창 급하니 나의 죽음을 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장군 맏아들 회, 조카 완이 분전해 적선 500여 척 중 200여 척을 바닷물 속에 집어넣었다.

난중일기는 한국인이 모두 읽어야 할 참회록이다. 430년 전, 역사에 기록도 안 된 숱한 백성 희생과 무도한 왜구가 훼손한 강산을 떠올려야 한다. 그 뒤는 어땠나. 일제는 또 이 땅을 36년간 더럽혔다. 6·25전쟁 땐 북한과 중공이 남쪽을 파고들었다. 21세기? 양민 학살과 영토 침략전이 벌어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만행이 몸서리치게 한다. 국토 수호엔 신구 권력이 따로 없다. 남한을 넘보았던 북한·일본·중국에 둘러싸인 엄중한 현실을 난중일기가 비춘다. 축배를 들기엔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