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앵카레 ‘수학은 조합찾기’ 규정
- ‘지구는 둥글다’ 증명에 상금 걸려
- 슈뢰딩거 DNA 구조 연구 선구
- 엔트로피 변화로 생명체 설명
- 캐넌 생리학 연구에 X선 첫 이용
- 인체 항상성 위한 공공보건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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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뢰딩거는 저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합스부르크 입술’을 유전병 사례로 제시했다. 이 오스트리아 왕가(1273~1918)는 잦은 근친결혼을 한 결과 주걱턱과 부정교합 입술이 두드러진 유전병을 앓았다. 막시밀리안 1세(왼쪽) 가족 초상화를 살펴보면 그런 사실이 확인된다. |
이곳은 고교 수학 교실. 교사가 학생들에게 극한 개념을 처음으로 가르치는 중이다.
교사 : 무한순환소수 0.99999…와 자연수 1은 같은 값을 갖습니다. 이해되나요?
학생 A:(속으로) 뭔 말이래. 한없이 가까워질 뿐이지 1은 아니잖아.
교사는 말없이 칠판에 증명과정을 적어간다. ‘0.99999…를 9로 나누면 0.11111이다. 0.111111…은 분수로 1/9, 즉 0.11111…=1/9. 양변에 9를 곱하면 0.99999…=1’.
학생 A:엉!
■ “수학? 쓸모 있는 조합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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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은 학문의 왕자이면서 골치 아프게 하는 데 선수인가. 중세에 발간된 ‘유클리드 원론’ 속 삽화를 보라. 학생과 교사가 짓는 표정이 어떤가. |
자연과학이라는 눈으로 보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푸앵카레·슈뢰딩거·캐넌, 19세기 세 과학자가 쓴 세 글을 직관을 좋아하는 이가 읽다 보면 왠지 뒤통수가 얼얼하다. 1908년 ‘과학과 방법’을 발표한 푸앵카레는 독일 다비트 힐베르트(1862~1943)와 더불어 당대 수학계를 빛냈던 다방면 지성인. ‘푸앵카레 추측’으로 유명하다. 옳다는 걸 증명하면 상금을 주는 밀레니엄 7대 수학 난제 중 하나였다. 러시아 은둔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이 2004년 이것을 100년 만에 증명해 한때 수학계가 들썩였다. 이는 푸앵카레가 1904년 지구가 둥글지 않다는 당시 일부 주장을 수학이란 방패로 반격하려고 내놓았던 가설이다. “닫힌 3차원 공간에서 폐곡선이 수축해 한 점이 된다면 이 공간은 구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게 요지.
여기서 드러나듯 푸앵카레는 수학뿐만 아니라 물리학·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과학 인식력이 지닌 의의와 가치를 좇는 철학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학문 선구자 같은 그런 면모를 잘 보여주는 고전이 ‘과학과 방법’이다. 과학을 대하는 자세와 사고를 언급할 때 곧잘 인용되는 책이다. ‘학자와 과학’ ‘수학적 추리’ ‘신역학’ ‘천문학’이란 4개 주제 아래 14개 글이 달렸다.
과학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저자는 “사실을 선택하는 여정”이라고 설명한다. 과학에서 ‘사실’은? 되풀이되고 단순한 일(현상)이다. 그것에서 보편성을 찾아내는 게 과학자가 할 일이다. 이 작업은 무척 큰 가치를 지닌다. 인류에게 사고·노력을 절약하는 이익을 주기 때문. 푸앵카레는 이 대목에서 과학자가 맛보는 희열을 이렇게 썼다. “조화로운 배열을 느끼고, 지성 내면에 숨은 아름다움…. 과학자가 길고 고통스러운 연구를 이어가는 이유.”
그는 수학을 의인화한다. “수학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그건 수학을 창조한 인간정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수학은 외부 세계에 빚진 바가 가장 적은 창조물이므로 이런 반성은 더욱 유익하다.” ‘과학을 위한 과학’을 중시하며 실용주의에 치우치는 시류에 제동을 걸었다. 과학 안보를 운운하며 전문 인력을 다양하게 육성하는 데는 미흡한 게 한국 실정이라면, 귀담아들을 조언이다.
수학을 연구하는 건 ‘쓸모 있는 조합을 발견하기’라 규정한다. 그런 유용한 조합은 아주 적다. “발견이란 식별이고 선택이다.” 대발견은 어떻게 이뤄지나. 수학자가 고뇌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충혈된 눈을 크게 뜨며 “유레카”를 외치지 않나 싶다. 푸앵카레 경우는 달랐다. 성급한 일반화는 삼가야겠지만, 그런 순간은 평범한 일상에서 불현듯 찾아온단다. 그는 마차 발판에 발을 올린 순간 번쩍하는 깨달음을 경험했다고 털어놓았다. 그 문제를 생각지 않는 상태였는데 말이다.
여기서 푸앵카레는 흥미로운 추정을 내놓는다. “이는 수학자 머릿속에서 (그 문제와 관련해) 오랫동안 무의식이 작동해 왔다는 걸 의미한다.” 문제가 풀리지 않아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두뇌 무의식 세계에서는 최적 조합을 찾아내는 ‘뇌 컴퓨터’가 끊임없이 돌아간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대중을 위해 쉽게 썼다고는 하지만, 논리학과 역학 대목이 많아 ‘수학 공포’를 자아내기도 한다. 똑 부러지게 이해하지 못해도 전체 맥락 파악에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
푸앵카레는 조국(프랑스)이 쌓은 측지학을 은근히 뽐내며 얘기를 끝낸다.
■ DNA 구조·염색체 연구 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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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균이라고 무시하지 말라. E. coli는 생물학 실험에서 빠지지 않는 귀한 몸. |
슈뢰딩거 역시 푸앵카레처럼 박학다식한 면모와 통찰력을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십분 드러내 보인다. 1944년 90여 쪽에 불과한 분량으로 처음 출간된 이 책이 과학 고전으로 널리 읽히는 이유다. 노벨상을 받은 이론물리학자인 저자는 아일랜드 트리니티대학에서 행한 ‘생명이란 무엇인가’ 강연을 이 책으로 묶었다. 목차를 살펴보면 감이 잡힌다. 유전 메커니즘 돌연변이 양자역학 델브뤼크 모델 엔트로피(질서와 무질서) 결정론과 자유 의지….
저자는 엔트로피 변화로 생명체 특징을 설명한다. “살아 있는 유기체는 계속 자체 내 엔트로피를 증가시켜(어떤 사람은 양의 엔트로피를 만든다고 말할지 모른다) 죽음을 뜻하는 최대 엔트로피 상태라는 위험으로 다가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므로 유기체는 환경에서 음의 엔트로피를 얻어야 죽음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살게 된다.”
저자는 유전물질이 대를 잇는 건 원자·분자가 안정한 양자적 구조를 이루기 때문이라고 봤다. 생명 현상을 양자역학으로 파악한 이 통찰은 DNA 이중나선 구조 규명(1953년 웟슨·크릭) 같은 분자생물학 개가에 길을 열었다. 그는 ‘비주기성 결정체’ 속에 유전정보가 들었다고 봤는데 이는 바로 오늘날 염색체라 부르는 고분자 화합물이다.
분자생물학에 미시-거시 개념을 제시한 점도 높이 살 만하다. 요컨대 물리학자와 생물학자는 상대 분야를 잘 알아야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맺는말은 유심론 일원론 색채가 강하다. 독특한 저자 철학인데, 수월하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 “인체? 항상성을 지녔지!”
처음으로 X선을 생리학 연구에 이용한 과학자가 캐넌이다. 1932년 펴낸 책이 ‘사람 몸의 지혜’. 저자는 인체가 지혜롭다고 했다. 생명을 늘 유지하도록 만드는 ‘항상성(Homeostasis)’을 갖췄기 때문인데, 그가 창안한 개념으로 인체 생리학 이론에서 핵심. 인체에 안전과 안정을 부여한다. 인체는 여러 가지를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게끔 가동된다. 수분·염분(갈증) 영양소(허기) 산소(가쁘게 숨쉬기)에 대한 고찰과 생체 실험 과정·결론이 이어진다. 고등 동물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인 체온과 혈액(중성) 항상성도 설명했다.
인체가 항상성을 이루는 데 교감·부교감신경계가 큰 역할을 함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게 되면 자기 신체를 따스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몸짱’이 아니라 ‘몽땅’하더라도. 인체가 항상성을 유지해 건강을 누리려면 적절한 사회적 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공공 보건이 중요하다는 말. 이런 사상은 1923년 ‘외상성 쇼크’ 발표로 이어졌다. ‘스트레스 학설’ 같은 심리 불안 요소가 인체에 미치는 관계를 밝힌 연구가 유명하다. 사회학자나 외과의사가 생리학을 이해하는 게 필수라는 주장. 신체를 상품으로 바라보는 현대인 시선을 바꿔 놓는 캐넌은 철학자 같다. 인체는 대단한 존재라는 자애심을 선물로 내준다. 결언은 사회생리학자가 주목할 만하다. “사회가 안정돼야 그 속 사람들이 육체적 정신적 안정을 누린다. 동시에 이런 개인 안정은 한층 더 높은 자유, 마음 안정과 여가를 만들어 낼 터이다.”
19세기를 살았던 이들 세 과학자가 펴낸 책은 내용상 완벽하지는 않다. 애초 보였던 오류 외에도, 2세기가 흐르는 동안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며 수정할 점이 다수 드러났다. 그렇더라도 이들이 이룬 통찰과 혜안, 생명을 제일 가치로 내세우는 신념은 빛난다. 우리 귀에 익은 통섭·융합 같은 단어가 흘러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다 어귀에 이르렀을 때 반겨주는 세 과학자가 이들이다. 그들은 직구를 던졌다. 우리가 두 손으로 잡는 건, 오류를 바로잡는 노력과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의문을 풀려는 순수한 탐구 정신으로 인류가 진일보한다는 명제다.
서평가·세상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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