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심 재개발·권력관계 등 주제
- 회화 39점·설치작품 1점 선봬
- 신세계갤러리 18일까지 전시회

도심 공사현장에선 온갖 소리가 새어나온다.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가벽을 세워놓지만, 무겁고 날카로운 기계음이 뚫고 나오고, 주위에 내건 펼침막에선 이해관계를 둘러싼 목소리들이 울부짖는다. 이 가벽이 걷히면 미끈한 건물이 출현하고 공사 소음과 각종 논쟁, 타협 과정은 사라진다.

김민정 작가의 ‘Blind’. 신세계갤러리 제공

작가 김민정은 ‘재개발 정비사업’ 등을 쓴 채 높게 가벽을 올린 공사현장 모습에 주목했다. 그림 속 정지된 장면에선 볼 수 있지만, 우리 눈엔 좀체 보이지 않는 오늘을 드러낸다.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청년작가 3인의 실험적 작품을 모은 전시 ‘불협화음을 노래하기(Singing the Dissonant Tone)’가 오는 18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갤러리(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 6층)에서 펼쳐진다.

이태훈 작가의 ‘시작의 반’. 신세계갤러리 제공

김민정 이성은 이태훈 작가의 회화 39점, 설치 1점이 걸렸다. 젊은 시선을 다양하게 풍성하게 담은, 주목할 만한 전시다. 이들은 낯설고 불안정하게 다가오는 불협화음처럼 서로 다른 문제의식을 노래한다.

김민정은 ‘발견(Discovering)’에서 도시 문제의 이면을 발견하면서 오늘을 말하기 위해 시도한다. 가림막으로 분리된 공사 현장과 도시 일상을 재현한 ‘블라인드(Blind)’ 시리즈는 걷잡을 수 없는 도시 재개발, 삶의 가치가 자본 가치에 역전되는 세태를 담았다. ‘있지만 없는’ 시리즈에서는 부산의 집창촌이었던 완월동 집결지가 사람의 인식 속에, 도시 이면에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에 집중한다.

이태훈은 밤에 마주하는 일상 풍경에서, 놓치기 쉬운 장면을 ‘관찰(Observing)’한다. 달 아래 가로등, 신호등 빛이 겹치는 밤 풍경은 낮 시간의 선명한 경계를 지운다. 작가는 과감한 붓 터치와 색감으로 왜곡된 형상, 혼재하는 경계를 재현했다. 밤 풍경을 보는 각기 다른 관점이 어긋나고 맞물리는 상황을 은유한다. 작가는 어제와 오늘의 밤 풍경이 다른 것처럼, 변화하는 세계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에서 각각의 관점을 통해 굴절되고 도래한다고 말한다.

이성은은 설치작품 ‘오벨리스크(Obelisk)’를 통해 사람과 사물을 둘러싼 부조리하고 지배적인 관념·권위·규율에 질문을 던지고 ‘재편(Reorganizing)’한다. 사방이 막힌 어두운 공간 한가운데 고대 이집트 태양신을 상징하는 기념비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장식 요소는 제거하고 육면체로만 쌓은 오벨리스크는 강한 충격에 약한 인조 대리석 하층부, 꼭짓점으로 불안하게 선 불완전한 중층부, 금 간 거울이 상을 왜곡하고 위태롭게 형태를 유지하는 상층부로 만들어졌다. 주변에 세운 통제선은 엄격한 권위와 규율, 이상 세계에 대한 막연한 환영 속 기념비에 가까이 접근하려는 열망을 시각화한다. 참여 작가의 또렷한 개성과 주제의식이 눈길을 끄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