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 드린다”는 말을 남기고 취임 1년 9개월 만에 자진 사퇴한 오거돈 전 시장의 인생 역정은 참 기구하다. 짧지 않은 기간(2003년 10월~2004년 5월) 부산시장 권한대행을 맡았던 그는 4번의 도전 끝에 선거를 통한 정식 시장 자리를 꿰찼다. 정작 본인이 부산시장 권한대행 체제를 만든 장본인이 된 점은 역설적이다.

오 전 시장은 지난해 말부터 ‘엑스포 시장’을 고리로 재선을 노리는 작업에 돌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 사업으로 선정된 2030 부산 월드엑스포의 유치 신청서가 제출되는 2022년 상반기에는 차기 지방선거가 실시된다는 것도 호재다. 몰락을 자초하고 부산 권력의 정점에서 퇴장한 ‘오거돈 부산시장의 시간’은 2020년 4월 23일 딱 거기서 멈췄다. 당분간은 ‘부산시장 후보들의 시간’이다.

부산시장 후보 자리부터 일단 거머쥐고 보자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과장하자면 부나방 떼가 불빛을 찾아 포닥거리는 모양새다. 당장은 내년 4월 7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등장하고 싶다는 후보가 많은 게 나쁘지 않다. 부산을 이끌겠다는 인물이 자천, 타천으로 넘쳐난다면 유권자는 다다익선이다. 그런데 영 마뜩잖다.

그 나름은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고, 이런저런 세력을 동원해 잔뜩 포장된 출마 이유 등을 펌프질하는 차기 부산시장 희망자들 중 확 눈길을 끄는 후보가 아직은 안 보인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시민 다수 선호의 절대 강자 후보도 나타나지 않았다. 여야 각 진영에서 후보를 구체화했을 때 상품성을 따져볼 수밖에 없다.

2022년 지방선거에 시선이 꽂혀 있던 출마 예상자들은 앞당겨진 기회를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분주하다. 갑자기 권력의지가 충만해진 인사들도 애드벌룬을 띄우며 여론 맛보기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이들 주변에는 ‘비선 실세 권력’의 알짜 열매를 따먹기 위해 ‘킹 메이커’를 자처한 사람이 적지 않다. 현실적으로 용인되는 그림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전·현직 국회의원에다 전직 대학 총장은 물론 현직으로 활동 중인 대학 총장까지 부산시장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전·현직 관료 등도 가세했다. 누구는 출마 속내를 드러내고 있으며, 일부는 캠프 개설까지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누가 물어봤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다”며 방어막을 치는 인사도 있다. 이들에 대한 평가를 일일이 내릴 필요성은 못 느낀다. 찬바람 불면 자연스럽게 정리될 테니까.

이런 형국인데도 여권이든 야권이든 차기 부산시장 후보 물망에 여럿 거론되니 권력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밥상에 숟가락만 하나 올려 포식하겠다는 인물이 북적거리는 것도 익숙한 풍경이다.

선거를 앞두고 꿈꾸는 것은 자유다. 이에 앞서 자신의 그릇과 자질, 시민적 평가 등을 자가 진단해볼 필요는 있겠다. 출마 명분을 찾았다면 당장 주변 인물 정리부터 나서는 용기를 발휘했으면 한다. 지금 옥석을 가려놓지 않으면 정치권 역학관계 등의 바람을 타고 운 좋게 내년 선거에서 당선되더라도 부산시청 ‘8층 사람들’의 소모적인 비선 권력 논란이 재발돼 발목이 잡힐 우려가 있다. 취임 초부터 함량미달이라도 신세 진 인사나 지분 요구에 나선 사람들 챙기기에 허송세월할 수도 있다. 현실 선거에 매몰돼 수준 이하의 인적 그룹을 꾸린다면 2022년 지방선거 후보 자리는 자진 반납해야 할 궁색한 처지가 될 것이다.

부산이 활력을 찾을 수 있는 미래 비전 전략 마련에 적극 나서는 행보도 절실하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아이템을 발굴하는 데 시간이 촉박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신공항이나 해양수도 확립 등과 같은 재탕 삼탕의 고만고만한 레퍼토리를 또 끄집어냈다가는 본선에 얼굴도 못 내밀고 ‘거론 후보’에 머무는 팔자에 만족해야 한다. 나라 안팎에서 사람이 몰리고, 지역주민은 살 맛 나는 부산의 내일을 꼭 챙길 수 있는 ‘공식 후보’라면 확장성도 있다. 미래 먹거리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밑그림을 그리고, 더 큰 부산을 설계하고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배포 있는 지도자를 유권자는 기다리고 있다.

남부권 지역과 조화로운 발전을 이끌고, ‘고도비만’에 빠진 수도권과 서로 보완관계를 엮어내는 부산의 큰 지도자는 국민적 지지를 절로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세월이 안긴 나이와 상관없이 시대 흐름을 꿰뚫는 젊은 감각에다 소통과 공감 능력이 탁월한 인물 등장을 시민은 꿈꾼다.

현실정치와 동 떨어지고 환상에 불과한 꿈일 수도 있겠다. 지나친 낭만이라는 말도 나올 법하다. 하지만 ‘부산시장 후보들의 시간’이기에 그 같은 낭만에 젖어보는 게 아닌가. 내년 선거 당선 뒤 ‘부산시장의 시간’을 제대로 보내고 일약 대권 후보 반열에 오를 지도자 탄생을 꿈꾸는 낭만도 좋을 성 싶다.

논설위원 choonj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