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것을 그리워했다. 떠밀려 살지라도, 납득할 수 없을지라도 삶은 이어지기 마련이다. 시간은 썩고 있었다. 결단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기어코 다른 관점을 갖는 것이다. 관점은 보는 위치다. 보는 위치에 따라 자신과 세상은 다르게 인식되고 해석된다. 다르게 인식되고 해석되면 다르게 행동한다. 다른 행동 중에 탁월한 것이 솟아난다. 그 탁월한 것이 문제를 해결한다. 문제해결은 새로운 관점으로 진화한다.

인간의 삶에는 어쩔 수 없는 쓸쓸함이 있다. 쓸쓸함은 근원적인 것이다. 근원적인 것이기에 모두가 몸 어딘가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가난과 막막함, 절박함도 쓸쓸함이다. 권태도 근원적인 것이다. 감정은 쉬지 않는다. 열정이 차지하지 못하면 권태는 마음의 빈자리를 채운다. 권태는 때로 삶을 뒤튼다. 고통을 선택하게 하고, 불행 속으로 들어가게 하기도 한다. 쓸쓸함과 권태는 몰입이 필요한 강력한 이유다. 책 읽기는 괴롭지만 질리지 않는 취미다. 괴로움(책)을 모으는 것과 괴로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집착은 심해지고 있다. 여러 잔소리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꿋꿋한 것을 보면 중독을 의심해 봐야 한다. 중독에 관한 일이라면 우리 안의 것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역사에서 정당성과 자기 합리화를 구하듯 우리 안의 것들도 합리화의 도구로써 제격이다.

호르몬은 많은 것을 설명하고 납득시킨다. 모든 중독은 도파민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맛있는 음식 과식 운동 음주 마약 권력 부 등은 쾌감과 관련된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시킨다. 그 결과 보다 충동적이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제법 돌아왔다. 두고 온 것, 쓸쓸함과 권태 그리고 괴로운 책읽기와 호르몬을 거쳐 겨우 본론을 시작한다. 단연코 좋은 글쓰기는 아니다.

간혹 깊은 관점을 만난다. 깊은 관점을 만나는 날은 횡재한 날이다. 반갑다. 두 팔을 크게 펼쳐 환대한다. 쓸쓸함과 권태는 흔적 없이 사라진다. 깊은 관점은 자기를 돌아보게 하고, 진부함을 깨고, 삶의 실상을 밝힌다. 깊은 관점은 통찰력이고 애정이다. 깊은 관점은 생각을 확장시킨다. 생각의 확장은 뇌의 신경세포들이 새롭게 연결되는 것이다. 성인의 뇌는 시냅스의 개수는 더 적고, 강도는 더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결과 고착화된 선입견과 감정이다. 그런데 생각의 확장으로 뉴런들이 새롭게 연결되면 선입견은 작아지고 융통성은 더 커지게 된다.

‘삼국유사와 21세기 한국학’은 탁월한 콘텐츠다. 깊은 관점으로 인해 고대사가 시간 여행을 한 느낌이다. 고대사는 흔히 소수의 지적 유희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은 그러한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지금 우리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극적인 전개 방식과 합리적 추론, 섬세한 문학적 표현까지 더해지니 재미있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읽은 후 생각은 카뮈의 말 ‘나는 저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나아갔다. 이 말은, 물론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패러디한 말이다. 뒤이어 생각은 배타주의, 집단이기주의, 무배려, 시대착오를 특징으로 하는 관료사회의 엘리트주의에 이르렀다.

권력은 몸의 호르몬을 변화시킨다. 권력은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과 만족감을 주는 호르몬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하고 그 결과 뇌의 안와전두엽이 손상된다. 도덕관념이 약화되고, 더 거짓말을 하고, 법을 위반하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책하지 않는다. 가지는 좀 더 뻗었다. 큰 정의와 작은 정의의 문제, 대학 소멸에 대한 대응으로 대학기업의 문제, 리액션만 있고 액션은 없는 문제, 실질적인 도움의 문제,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의 양립 가능성의 문제 등. 메이저의 삶이 있고, 마이너의 삶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제각각 최선의 삶들이 있을 뿐이다. 그 최선의 삶들이 모여 역사가 되었고, 지금의 우리가 있다. 최선의 삶들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저마다의 애환이 깊다. 우리는 살기 위해 태어난다. 잘 살기 위해 살아간다.

도서출판 함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