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제 얘기다. 올해로 부활 30년이다. 애초 지방자치제는 제2공화국(1960~61년) 때 우리 헌정사상 처음 실시됐다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세력에 의해 전면 폐지되고 말았다. 이후 30년 만인 1991년 지방의회 선거와 기초·광역의회의 잇딴 출범으로 빛을 되찾았다. 그로부터 다시 30년을 맞은 시점이니 그 의미가 무겁게 다가온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지방자치는 이름과 취지가 무색할 지경이다. 자립·자생 기반 마련이나 지속 가능한 발전은 고사하고 소멸위기에 직면한 자치단체가 수두룩하다. 지난해 12월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만 해도 평가가 엇갈린다. 지방정부·의회의 자율성과 책임성 확대, 주민참여 강화 등에서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으로 지방의 피폐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국가통계포털을 보자. 지난해 전국 226개 기초단체 중 재정자립도가 20% 미만인 곳이 104곳에 이른다. 그나마 50% 이상은 10곳인데 이들 모두 수도권이다. 특히 지방세 수입으로 인건비조차 충당하지 못하는 기초단체가 부산 7곳을 포함해 106곳이나 된다. 인구절벽으로 소멸위험에 놓인 지역도 105곳에 달한다. 더 심각한 것은 수도권과의 격차다. 자치구 중 재정자립도 최저·최고인 부산 영도구(9.1%)와 서울 서초구(54.7%)의 실상이 극명하다. 경북 상주시(8.4%)는 경기 화성시(66.3%)에 비해 8분의 1 수준이다. 지방자치 부활 30년의 씁쓸한 현주소다.

여기에는 수도권 초집중화와 지역 간 부익부 빈익빈의 영향이 크다. 이런 격차를 줄이지 않으면 지방소멸의 시계가 빨라질 게 뻔하다. 근래 부산 울산 경남 3개 시·도가 동남권 광역연합과 메가시티 구축에 나선 것도 생존전략의 일환이다. 각자도생으로는 청년 인구의 수도권 유출과 지역경제 침체 등의 악순환을 타파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미 드러났다. 수도권 일극체제에 대응해 광역권으로 뭉치고 협력해야 살 길이 생긴다는 말이다.

사실 부울경 협력체제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오래 전부터 행정협의회와 경제발전위원회, 교통·관광 분야 실무위원회를 꾸렸다. 자치단체조합인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도 같은 범주에 든다. 그러나 부울경 협력은 거의 ‘속 빈 강정’이다. 실속은커녕 이해관계와 행정구역의 칸막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여러 사안에서 마찰을 빚어왔다. 부산항 신항의 명칭·관할권을 놓고 약 8년간 다퉜던 것이 대표적이다. 부산~거제 연결다리(거가대교)도 마찬가지였다. 부산경남 경마공원 유치 때는 부지 선정과 명칭, 마권세 권한을 놓고 두 시·도가 팽팽하게 맞섰다. 그 외 신공항 입지와 남강댐 광역상수도, 광역도로 건설, 옛 서부산톨게이트 이전 문제를 포함해 갈등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 같은 현상은 결국 제도적 한계를 말해준다. 행정협의회만 해도 지방의회가 빠진 데다 합의사항에 구속력이 없다. 그러니 문제 해결과 협력이 잘 안 된다. 더욱이 ‘한 지붕 두 가족’인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에서는 불화와 알력을 빚은 지 이미 오래다. 심지어 두 지역을 아예 분리하자는 주장마저 나온다.

그런 상황에서 광역연합은 동남권의 새로운 시험대다. 개정 지방자치법으로 특별지방자치단체 설치·운영의 법적 근거가 마련돼 광역연합의 길이 열렸다. 기존 협력체제와는 다른 차원의 법·제도적 장치가 갖춰진 셈이다. 이를 통해 3개 시·도의 이해 갈등과 광역행정 수요 증가 및 주민 교통 불편 등의 문제를 하나씩 효율적으로 해결해 나가면, 부울경 연계·협력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을 터다. 관건은 역시 3개 시·도의 확고한 의지와 철저한 계획 수립 및 실행에 있다.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운영이 잘 되어야 효과를 내기 마련이다. 더구나 광역연합을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한다면 행정통합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말이 그렇지 행정통합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일본 오사카 부(府)·시(市) 통합안이 주민투표에서 다시 부결된 것만 봐도 그렇다. 이 안은 오사카시를 없애고 4개 특별구와 주변 기초단체를 합쳐서 오사카도(都)를 만드는 내용이다. 5년 전 부결 이후 자치단체 간 재협의와 의회동의 절차를 밟았음에도 주민들은 또 퇴짜를 놓았다. 4년 전 부산의 원도심 4개 자치구를 통합하는 방안이 끝내 무산된 것도 반면교사다.

이제는 광역연합에 힘을 기울일 때다. 그 설치와 관련된 여러 난제를 슬기롭게 풀고 운영의 성과를 쌓아야 한다. 그런 바탕이 있어야 부울경은 자연스럽게 단일 광역경제권을 이루고 행정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물에서 숭늉 찾듯이 섣불리 행정통합 운운하는 것은 주민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광역연합이 동남권 상생 협력과 메가시티 구축, 국가균형발전의 든든한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구시영 선임기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