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매도 매우 아픕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한 말이다. 부동산 부패 청산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종합 대책을 내놓는 회의였다. 문 대통령은 “야단맞을 것은 맞으면서 국민의 분노를 부동산 부패의 근본적인 청산을 위한 동력으로 삼아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4·7 부산·서울시장 보궐선거를 9일 앞두고 문 대통령이 전국에 생중계 하면서 밝힌 부동산 정책 반성문이자 ‘지위 고하·정치 유불리를 막론하고 투기를 파헤치겠다’는 강력한 의지였다. 다음날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문 대통령이 ‘야단맞을 것은 맞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몹시 화가 났을 때 쓰는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부동산 정책은 문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내년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띤다는 부산과 서울시장 보선 상황이 만만치 않은 점을 고려할 때 문 대통령의 위기 의식이 읽힌다. 그 바탕엔 조국 사태와 윤석열 사태로 겹겹이 쌓여 폭발하는 부정적 민심에 기름을 끼얹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깊은 불신엔 청와대 인사들이 자초한 ‘실점’이 한몫을 한다.

청와대에서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김상조 전 정책실장의 낙마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임대차 3법 시행 직전 본인의 아파트 전세보증금을 14.1% 올려 받은 사실이 보도되자 옷을 벗었다. 마침 문 대통령이 반부패정책협의회를 하는 날이었다. 앞서 노 전 비서실장은 ‘똘똘한 한 채’, 김조원 민정수석은 ‘직보다 집’이라는 유행어를 남기고 물러났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 불똥이 번졌다. 임대차 3법 개정안을 입안한 박주민 의원이 전월세 갱신 때 아파트 임대료를 9%가량 올려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야당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청렴한 척, 깨끗한 척, 세상에 있는 정의는 모두 끌어 모으는 척”에다 “아내 탓, 집주인 탓, 부동산 사장님 탓”까지 더해 그동안 제기됐던 구설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쯤되면 문 대통령의 의지가 무색해질 지경이다.

민주당은 납작 엎드렸다. 이낙연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지난달 31일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여러분 화가 풀릴 때까지 반성하겠다”고 밝혔다.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은 지난 1일 대국민 성명을 통해 “원인이 무엇이든 저희가 부족했다”며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말했다. 김 대행은 특히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내로남불 자세도 혁파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부동산 정책이 집값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은 데다 공직자들이 위선적으로 부동산 수익을 추구하는 행태가 국민적 분노를 촉발하자 몸을 낮춰 읍소한 셈이다.

지난 2일과 3일 치러진 사전투표가 20.54%라는 역대 최고 투표율로 마감됐다. 부산은 18.65%였다. 이를 두고 분노투표라는 촌평이 나왔다. 불을 지핀 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2일 대국민 호소문에서 “이번 선거는 서울·부산 전임 시장의 추악한 권력형 성범죄를 심판하는 선거이자 지난 4년간 문재인 정부의 참담한 실정을 심판하는 선거”라며 “분노하신다면 투표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작 해석은 제 논에 물 대듯 영 딴판이다. 국민의힘은 김 위원장 주장이 주효해 문 정부와 집권 여당에 등을 돌린 2030세대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은 여론조사에서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던 ‘샤이 진보’가 투표장에 나왔다며 반색했다. 부산과 서울에서 모두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을 느낀 지지자들이 정부와 여당에 한번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표에 나섰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사전투표에 앞서 부산시장 보궐선거 선거공보물을 살펴봤다. ‘1년을 10년처럼 쓰겠다’는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의 잘 정리된 내용도 그렇지만, 명함만한 크기의 미래당 손상우 후보, 진짜 민생을 강조한 민생당 배준현 후보, 부산은 부패한 도시라는 자유민주당 정규재 후보, 부산시민의 생명과 주권을 지키겠다는 진보당 노정현 후보의 주장에도 울림이 있었다. 유세와 토론, 보도자료와 기사를 통해 접하던 공약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최선이 아니면 차악을 선택하는 게 투표라지만 ‘사과선거 분노투표’로 짜인 보선 판도를 걷어내니 왜 부산에서 선거를 하고, 어떤 사람이 부산을 이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오거돈 전 시장을 뽑아준 부산시민 앞에 민주당 후보는 납득할 대안이 될 수 있느냐, 엘시티부터 부인의 땅까지 도덕성 문제에 발목이 잡힌 국민의힘 후보에게 리더십을 맡겨도 될 것인가란 문제다. 또, 그 많은 공약을 주워담을 그릇이 되는지 따져볼 일이다. 아직 고민할 시간은 남았다. 7일 그 답을 찾는다.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