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불안정한 우리 사회·경제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전 세계적 문제인 계층 간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어 초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임대-임차 관계에 있어서도 임차인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입는 상황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듯하다. 경제적으로 세계 경기를 크게 위축시키고 단기적 수요 급감과 중장기적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정책적으로는 시장논리에 밀려났던 공공정책이 소환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익공유제 도입이다. 코로나19로 큰 혜택을 입은 기업들이 이익의 일정부분을 피해 구제 기금으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주택 공급에 있어서도 기존 민간분양 방식에 더해 이익공유형 등 공공자가주택 유형이 도입될 전망이다.
항만산업부문도 코로나19를 비켜나지 못했다.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내 입점업체들 다수가 문을 닫은 지 1년이 넘었다. 2019년 한·일 갈등으로 여객수가 줄어들다가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여객선 운항이 전면 중단됐다. 북항재개발사업지 내에 부산항만공사가 건설 중인 마리나는 운영사 선정이 세 차례 무산됐다. 임대료 부담과 높은 불확실성 탓이다. 매년 증가세를 이어가던 부산항의 컨테이너 물동량도 지난해는 0.8% 감소했다. 국내 경기와 연계되는 수출입 화물은 5.3% 줄고, 그나마 환적화물이 3.3% 증가하여 큰 하락폭을 막았다. 일본 중국 미국 등 우리의 주요 교역국보다 안정적인 방역 대응 덕이니 안도할 수 없다.
해운항만산업을 둘러싼 경기 전망도 녹록치 않다. 코로나 이후의 경기회복 둔화, 신종 팬데믹 도래, 기후위기 심화, 글로벌 가치사슬 급변 등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들이 미래 핵심 트렌드로 거론된다. 컨테이너 터미널은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글로벌 공급망이 작동해 전 세계에 생필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앞으로도 그 기능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30년이 넘는 장기 임대 계약기간 동안 고정임대료를 내는 현재의 운영체계로는 불확실성의 파고를 넘기 어렵다. 신고제로 운영되는 하역요율 제도도 문제다. 터미널 운영사가 받는 요율 수준은 들쑥날쑥하다. 운영사간 경쟁으로 가격 덤핑이 선사 유치의 주 전략이 되고 있다. 요율이 낮을수록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적정 수준을 넘어서까지 더 많은 화물을 처리해야 하는 구조다. 결국 하역 장비와 인력을 과도하게 운용하게 되고 이는 종사자의 근무 여건을 악화시키며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항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익 공유 임대료, 수요 연동 임대료, 요율 인가제 등 과거에 폐기된 대안들을 적극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이익 공유 임대료는 수입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임차인은 임대인이 손해를 보는 기준 임대료를 내고, 반대의 경우 초과 이익을 임대인과 임차인이 일정 비율로 나누어 가지는 개념이다. 즉, 불확실성의 상당부분을 임대인인 항만공사가 흡수하는 방식이다.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입점업체에 이러한 개념이 도입 중이다. 임대료 100% 감면에 이어 이익공유형 임대계약이 기존 임대료 체제의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요율 인가제는 정부가 요율을 규제하는 것이다. 정해진 요율 수준 이하로 선사와 계약을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가격 과당 경쟁을 막고 하역 시장의 안정화를 꾀하는 것이다. 공공성이 강한 항만 기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핵심 요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 제약 요인은 곳곳에 있다. 부산 신항의 경우 항만공사의 관리권한이 미치지 못하는 민간 기업이 개발하여 운영하는 ‘민자 부두’가 전체 하역능력의 약 50%를 차지한다. 요율 인가제는 가격 담합으로 공정거래 위배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익 공유형 임대료와 요율 인가제가 결합할 때 터미널 운영사간 과당 경쟁을 막고, 이익 극대화를 위해 적정 하역 능력을 초과하여 화물을 처리하는 과부하 운영을 막을 수 있다. 적정 하역능력 수준으로 화물을 처리해도 적정 이익이 보장되는 터미널을 만드는 것이 지속가능발전 전략이기도 하다.
항만은 국가의 핵심 기반시설이다. 관리 주체이자 임대인이 공기업인 항만공사인 만큼 임대-임차 관계가 단순하다. 이익공유제와 요율 인가제 도입이 수월할 수 있다. 넘어야 할 산도 많겠지만 난제 없는 정책 과제가 그리 많겠는가. 지속 가능한 항만 운영을 위해서 터미널 운영사, 항만공사, 정부가 서둘러 함께 지혜를 모을 때이다.
부산항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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