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킹덤’은 조선 시대 동래에서 발생한 역병을 소재로 한다. 영화 ‘부산행’에 이어 우리나라 토종(?) 좀비가 나온다. 서양 좀비가 천천히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며 정적인 데 반해, 한국 좀비는 힘껏 뛰어다니기 때문에 박진감이 넘친다. 질병을 퍼뜨리는 역동적인 좀비의 인기로 조선 시대 유행한 전염병에 관심이 생겼다.

	그림= 서상균 기자

전염병에 걸린 좀비와 비슷한 개념으로 홍역귀가 있다. 예전에는 병을 일으키는 귀신이 있다고 믿었는데, 홍역 귀는 홍역을 의인화한 귀신이다.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역병에는 귀신이 있어서 서로 전염시킨다.”고 말했다. 홍역이 귀신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이런 미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당시에는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전염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프랑스 파스퇴르와 독일의 코흐가 활동한 19세기 말에서야 밝혀졌다.

그럼 과거에는 어떤 전염병이 유행했을까? 조선 중기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임진왜란 후 홍역이 널리 퍼졌다고 기록했다. 홍역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수십 년 주기를 두고 재발해 민중을 괴롭혔다. 정조 임금 때에는 전염병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1786년 홍역이 발생하자 정조는 약을 구할 수 없는 환자를 위해 약을 무료로 지급하고, 5일마다 환자 현황과 처방을 기록해 직접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비상 상황에 맞춰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고 관청의 요식적인 대응을 질타하며 전염병에 철저하게 대응하라고 명했다. 임금의 신속한 조치는 효과를 거두어 진료환자가 6배로 늘어나고 응급환자의 방문 치료가 증가했다. 3주간 1000명 넘는 사람이 치료받았다. 두 달 지나자 환자가 200명 아래로 감소해 다행히 큰 피해 없이 홍역이 지나갔다. 방역대책이 도움이 되었지만, 무리 없이 지나갈 수 있었던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11년 전 대유행한 이후 홍역의 기세가 꺾인 것이다. 홍역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독성이 약해지고 많은 사람이 면역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즉 집단면역이 생겼다.

조선 후기에는 천연두가 창궐했다. 천연두에 걸리면 피부에 수없이 많은 발진이 생겨 흉측하게 변하는데, 후유증이 남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병이었다. 사람들은 천연두를 ‘마마’라는 극존칭을 써가며 어서 빨리 나가줄 것을 간절하게 바랐다. 황해도 곡산 부사에 임명된 정약용도 홍역과 천연두가 퍼지자 방역에 나섰다. 정약용은 이때 경험과 전염병으로 인한 자식들의 죽음을 바탕으로 국내외 의학서적을 참고해 ‘마과회통’을 저술했다. 홍역을 치료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천연두 예방법으로 영국 의사 제너의 우두 법을 소개했다.

조선말에는 콜레라가 돌았다.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내는 고통’을 준다는 뜻으로 콜레라를 한자로 호열자(虎裂刺)라고 했다. 콜레라는 발생한 전례도 없고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미지의 병이었다. 인도 벵골지역에서 발생하는 풍토병인데 영국의 식민지배로 군대와 교역로를 통해 조선까지 들어온 것이다. 압록강 건너 평안도를 시작으로 발병 한 달 만에 10만 명이 죽고, 모두 50만 명이 사망해 큰 피해가 났다.

코로나 19가 우리 생활을 강타한 지 1년이 넘었다. 힘들고 답답하지만, 역사적으로 전염병은 줄곧 인류와 함께해왔다. 시기마다 종류가 다를 뿐, 여러 가지 병이 차례차례 덮쳐 고통을 주었다. 지금 겪는 코로나 19가 지나가도 또다시 새로운 전염병이 생길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현재는 유전자를 이용한 최첨단 백신(mRNA)과 유전공학을 이용한 항체치료제도 만들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병에 직접 걸려 면역을 얻었지만, 현재는 예방주사로 가능하다.

정부는 11월까지 집단면역을 형성한다는 계획이다. 달성될지는 미지수다. 백신 확보 문제와 함께 희귀혈전증, 과민성 쇼크 등의 부작용이 있다. 부작용의 빈도가 아주 낮지만, 이런 소식을 들으면 불안하다. 단순한 근육통이나 발열 정도라면 무리 없으나 백신과 인과관계가 있는 피해가 발생하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보상해야 한다. 원활하고 안전한 백신 접종으로 모두가 전염병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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