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로야구 경기가 얼마 전 시작됐다. 부분적으로나마 관중 입장이 허용됐으니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좀이 쑤셨던 야구광들에게는 더 없이 기쁜 일이겠다. 이들에게 왜 야구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우문이 된다.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만한 대답이 나올 것도 분명하다. 짐작하건대 이 가운데는 ‘투수와 타자 간 불꽃 튀는 수 싸움’도 들어있을 법하다. 야구 경기를 보노라면 투수는 타자를 무력화하기 위해 직구나 변화구 등 다양한 구종 구사는 물론이고 완급 조절 등 온갖 묘책을 짜내 공을 던지는 것이 느껴진다. 타자 또한 쉽게 물러설 리 없다. 어떻게든 진루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투수의 마음상태를 흔들기 위한 과장된 몸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같은 수 싸움은 야구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우리 사회 어디에나 존재하는 일이다. 지난 주에 끝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야 후보들은 상대를 낙마시키려 ‘신의 한 수’ 마련에 골몰했다. 인물론을 비롯해 대세론, 책임론 등 갖가지 전략이 동원됐다.
두 도시에서 벌어진 보궐선거 전 활용된 수 싸움 가운데 하나는 부동산을 둘러싼 공방이었다. 부산에서는 야당 후보자의 해운대 고급 아파트 보유가 논쟁의 대상이 됐다. 서울에서는 여당 후보자 남편이 거주한 일본 도쿄의 아파트, 야당 후보자의 내곡동 땅 특혜 보상 의혹이 토론회 내내 논쟁으로 이어졌다. 후보자들은 이 사안을 상대방에 치명타를 가할 결정적 무기로 사용하려 했다. 이 같은 공세가 선거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수치로 가늠하기 힘들다. 하지만 상대 후보자에 깊은 내상을 입혔을 것만은 자명하다.
부동산 문제가 선거운동 기간 내내 핵심으로 떠오른 것은 이 사안에 민감한 유권자 정서를 고려할 때 당연한 일이다. ‘부동산과 교육을 건드리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거의 진실이라고 여겨도 무방하다. 일종의 역린(逆鱗)인 셈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지도층 인사들이 부동산 의혹에 연루돼 현직에서 물러나거나 곤경에 처하는 모습은 이제 일상화가 됐다.
정부가 이 같은 국민 감정을 모를 리는 만무하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에서부터 경제부총리, 주무부처 장관에 이르기까지 고심하는 흔적도 역력하다. 그만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위기에 몰렸다는 반증이다. 경제를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와 실무를 담당하는 국토교통부는 더 바쁘다. 조금 말을 보태자면 하루가 멀다 하고 부동산 대책이 쏟아져 나온다. 게다가 국토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의혹이 터진 이후 예전에는 없었던 ‘위클리 주택공급 브리핑’까지 실시하고 있다. 매주 주택 공급대책의 추진 현황과 성과를 보고해 불필요한 의혹 양산을 막겠다는 뜻이다.
국토부에서는 요즘 정례 보도 자료 외에 추가 설명자료 배포도 부쩍 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다 보니 이를 해명하기 위함이다. 최근에는 공동주택 공시가격에 대한 설명에 열을 올린다. 서울 서초구와 제주도가 공시가격 산정 기준에 문제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난 이후부터다. 그런데 좀처럼 지자체의 불만이 잦아들지 않는다. 며칠 전에는 부산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부산은 수영구 해운대구 동래구 등 공시가격 급등지역을 중심으로 산정 오류 및 착오 사례를 수집해 문제가 있으면 재조사를 국토부에 적극 요청하기로 했다. 국토부로서는 자신들의 해명만으로 이 사안이 하루 빨리 물 밑으로 가라앉았으면 하련만 파장은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점차 전국으로 퍼져 나가는 모양새다.
이런 까닭에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국토부 홈페이지에는 관련 대책이나 해명이 나올 때마다 이를 반박하는 글이 줄을 잇는다. 때로는 “제발 힘없는 사람을 살려달라”는 읍소도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을 보노라면 평소에는 댓글을 잘 달지 않았을 듯한 서민이 정말 분노에 차 이 같은 글을 올렸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4·7선거에서 대패한 정부와 여당은 1년이 채 남지 않는 대선이 무척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번 실패를 거울 삼아 국면을 바꿀 만한 대책을 내놓으려 장고를 거듭할 터다. 최근 여당 내에서 초선 의원을 중심으로 쇄신 목소리가 높아지고 지도부 물갈이론이 나오는 것은 반전의 기회를 잡으려는 몸부림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 때문에 얼어붙은 민심을 녹이지 못한다면 다음 싸움에서도 승산이 희박하다고 한들 틀린 말이 아니다.
집 문제로 인해 받은 쓰라림은 오래 간다. 누구처럼 ‘똘똘한 집 한 채’ 갖지 못한 서민 가슴은 가진 자들이 벌이는 투기 행각에 시퍼렇게 멍이 든다. 정부가 뼈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상처는 빨리 아물수록 좋다.
세종팀장 haore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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