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가 사라졌다. ‘개콘’ 종방 이후 ‘코빅’이 분투하고 있지만 방송에서 코미디는 수명을 다한 것 같아 안타깝다. 방송의 탄생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코미디는 텔레비전과 더불어 우리 일상의 불가결한 존재였다. 70년대 말 저질이라는 이유로 코미디를 방송에서 퇴출하려 했다가 뜻밖의 거센 반발로 무마된 적도 있다. 서슬 퍼런 유신정권도 손댈 수 없을 만큼 코미디는 오래된 관습이었다. 그런데 지금 방송에는 코미디라는 말 자체가 사라졌다. 대신 적당히 웃을 만한 내용이면 그냥 예능으로 뭉뚱그린다. 코미디언 출신 예능인은 있지만 코미디언이 코미디하는 데는 이제 없다. 그래도 괜찮을까.
사라진 코미디를 떠올리며 코미디를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한다. 코미디는 기본적으로 나보다 열등한 이에 대해 느끼는 우월의 감정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이 코미디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열등한 이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며 그가 승리하는 반전을 기대한다. 미명의 불안과 공포를 안도와 기대로 바꾸는 것이 저 우스꽝스러운 코미디언이 자아내는 웃음이다. 그런 점에서 코미디는 공감과 소통의 문화양식이다.
그래서 코미디언을 보는 시선에는 여타의 셀럽들과는 다른 감정이 있는 듯하다. 코미디언들은 저마다 스타일이 있어 짝을 이뤄 무대에 오르면 그 자체로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배삼룡이 넘어지고 구봉서가 옆에서 거들 듯, 한쪽이 치고 나서면 또 한쪽이 받쳐주며 코미디는 구성된다. 뻔하고 저질이라 할지 모르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웃음을 얻는다.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찬 어느 군중 공연장, 코미디언의 이름이 불리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코미디언의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을 웃길 때, 코미디는 웃음의 장치가 아니라 웃음 그 자체가 된다.
코미디가 없는 지금의 시절을 대변하는 말이 “이러니 개콘이 망하지”일 것이다. 코미디보다 더 웃긴 현실이 차고 넘친다는 말이다. 어이없는 정치판이나 실수를 남발하는 스포츠 경기 같은 데서 흔히 듣는다. 그런데 이 말이 나온 지는 꽤 됐다. 20세기 중반 이후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혹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의 도전 앞에서 소설과 영화는 존폐를 걱정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소설도 영화도 망하지 않았다. 그런 현실마저 그려내는 게 예술의 본질이다. 코미디라고 다를까. 정치판이 아무리 웃긴다고 한들 코미디를 대신할 수는 없다. 개콘을 무너뜨린 정치판의 웃음이란 실망과 분노의 반어적 표현일 뿐이다. 여기에서 어떤 긍정적 에너지를 찾기는 어렵다. 현실의 이해관계를 두고 벌이는 자조와 편가르기가 대부분이며 진실의 세부적 차이를 무마하는 감정적 반응만을 끌어낸다. 정치 대신 다른 것을 대입해도 마찬가지다. 그런 웃음은 원초적인 불안을 물리치고 안도감을 선사하는 코미디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럼에도 어떤 것이 코미디를 대신한다면 그것은 코미디가 담보했던 삶의 위기를 뜻한다. 코미디는 저질이라 욕먹더라도 오로지 웃기는 데에만 집중한다. 정치가 웃긴다는 말은 정치가 웃음을 빼앗아갔다는 의미일 터이다. 정치가 우스우니 정작 웃을 일은 없다는 것이다. 코미디언이 삼삼오오 모인 유튜버 채널이 코미디를 대신한다고도 하는데, 그 또한 우리 삶의 급격한 변화를 가리킨다. 텔레비전은 현대 가족을 구성하는 핵심 매체라 평가받는다. 이를 대체한 유튜브 채널은 가족 공동체 대신 개인의 특수한 습관과 기호를 정밀하게 저격하는 웃음 시스템 변화의 증거이다. 스마트폰 속의 웃음이 불안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웃음이 웃음답지 않을수록 코미디의 조건 없는 웃음이 그립다. 꼭 그래야 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웃음이란 본래 여러 가지 아닌가. 그러나 웃음의 본질은 원초적인 데 있다고 생각한다. 십수 년 전 ‘골목대장 마빡이’를 봤을 때 충격은 아직 선 한데, 순수하게 자빠지고 엎어지는 슬랩스틱만으로 이렇게 웃길 수 있다는 점이 새삼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런 충격을 다시 겪어보고 싶을 뿐이다. 코미디의 부활은 코미디와 코미디 아닌 것들의 분리를 의미할 것이다. 예컨대 코미디와 정치 중 어느 한쪽이 나머지를 포섭하는 것이 아니라, 코미디가 정립됨으로써 정치의 가치도 정립되는 상황. 이 또한 코미디의 효용 아니겠는가. 정치가 대신 웃겨주면 정치도 코미디도 다 망했다는 증거일 테니, 웃음은 코미디에 맡겨주길 바란다.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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