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부산시장은 이름난 보수논객과 대학교수 출신답게 언변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이번 4·7 보궐선거에서도 두드러졌다. 여러 토론회와 유세장에서 부산의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는데 막힘이 없었다. 그 중 부산의 가장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로 청년인구 감소와 혁신역량 부족을 지적하며 핵심 요인으로 대학을 꼽았다. 즉 지역 대학들의 고사 위기가 청년층 유출이나 일자리 부족, 기업·투자 유치난 등과 다 맞물려 있다는 뜻이다.

그의 표현을 옮기면 이렇다. “(지역) 대학이 죽어가고, 산업이 함께 가라앉으니 일자리가 없다. 이로 인해 지역 대학에서 키운 인재들이 부산을 떠난다. 이런 악순환을 선순환 구조로 바꿔야 한다.” “대학과 산업을 함께 살리는 특별한 방안이 없으면 부산은 마치 삶은 개구리처럼 서서히 말라갈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제1 공약으로 ‘산학협력 도시’를 내세운 건 당연하다. “청년이 떠나지 않고 기업이 들어오고 돈이 몰려드는 취업중심의 산학협력 도시를 만들겠다”는 약속이다. 그런 방향이 바람직하고 옳다는 것에는 별 이견이 없을 듯하다.

사실 산학협력과 지방대 육성이 강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는 1980년대 이후 국가 기술력 향상을 위해 산학협력 증진에 힘을 기울였다. 20년 전 참여정부 때는 지방대를 지역의 자립적 발전과 혁신역량 강화의 최대 요소로 설정하고 정책을 폈다. 아울러 수요자 지향의 산학협력 중심대학 사업, 대학별 산학협력단 설치 등에 열을 올렸다. 2년 전 부산시만 해도 전국 처음으로 대학업무 전담부서인 시산학협력단을 신설해 놓은 상태다. 여기에다 대학직원들의 시청 파견근무까지 이뤄졌다.

하지만 지역 대학들은 여전히 신입생 확보난에 허덕이고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다. 산학협력도 이름만 좋을뿐 내실이 빈약하다. 더욱이 수도권보다 훨씬 뒤처진다. 대학의 기업체 기술이전만 해도 그렇다. 국가통계(대학 산학협력활동 실태조사)를 보자. 2019년 부산의 기술이전이 314건이나 서울은 1000건, 경기·인천은 1156건에 이른다. 충남·북(428건) 전남·북(371건)보다도 적다. 그만큼 부산의 산학협력이 잘 안 된다는 걸 말해준다.

이는 지역의 연구개발비(공공기관·대학·기업체 합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2019년 부산의 그 규모는 1조5817억 원으로, 서울 13조4449억 원, 경기 45조9348억 원, 대전 7조7058억, 인천 2조8459억 원에 비하면 낯 뜨겁다. 그 중 자치단체 출연분도 부산 34억 원, 서울 376억, 경기 132억 원으로 엄청난 격차다. 연구개발인력 또한 마찬가지다. 부산은 2만3115명으로, 경기 23만9971명의 10분 1 수준이다. 서울 18만311명, 인천 2만8856명보다 한참 뒤떨어진다. 혁신을 주도하는 국내 ‘창의인력’의 60%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정이 이러니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 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지방대육성법)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 2014년 시행된 이 법의 제3조는 지방대·지역인재 육성을 국가와 자치단체의 책무로 규정한다. 공약대상이나 선택이 아닌 법적 의무사항인 것이다. 그에 필요한 예산 확보 등 재정적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항도 명시돼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그런 책무에 충실해 왔는지 의문스럽다. 근래 부산시가 지역 대학들의 위기 극복을 위해 부산상공회의소·교육청과 4자 실무협의체를 추진 중인 것도 내실이 없으면 용두사미에 그치게 된다.

박 시장은 선거 기간 산학협력을 누차 역설했다. 그동안 산학협력이 실질적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대학-기업의 연계강도가 대단히 약하기 때문이라는 점도 꼬집었다. 대학은 정부 지원비를 따내려 하고, 기업은 제대로 된 인력양성보다 인턴십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따라서 기업이 대학 속으로, 대학이 기업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백 번 지당한 말씀이나,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원론적인 내용으로 그간 학계나 산업계 등에서 숱하게 제기돼 왔다. 관건은 이런 문제를 풀어내는 실질적인 정책과 실행력이다.

부산의 산학협력은 한마디로 갈 길이 멀다. 물론 산학협력이나 지방대 육성이 부산시만의 노력으로 이뤄지기는 힘들 터다. 대학의 수요자 맞춤형 커리큘럼을 비롯한 내부 혁신, 그리고 산업계의 적극적인 동참이 병행돼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이끌어내고 협력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시장의 역량이다. 이를 위해서는 산학협력 전반의 면밀한 실태조사가 필요할 때다. 박 시장은 선거 때 시장의 중요한 역할로 신산업 발굴과 자원동원능력 등을 꼽았다. 박 시장은 이제 백 마디 말보다 그런 역량을 실제로 보여줄 시간이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산학협력 도시’ 하나만 잘 해도 괜찮은 평가를 받지 않을까 싶다.

선임기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