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교장 선생님이 턱도 아닌 방법을 시도하려고 하는데 좀 말려 주세요.”

H 부장 선생님이 C, G 부장 선생님이 있는 3학년실에 와서 큰소리로 하소연을 한 것이다. 2013년 M고등학교에 부임해 학교조직을 재설계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학교는 그 전해에 시교육청으로부터 ‘교무·행정 통합모형 시범학교’로 지정받아 운영하였는데 이러한 모형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있었다. 왜 이런 결론이 나왔을까 하고 진행된 과정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교무실과 행정실을 그냥 물리적으로 통합한 것이 문제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다. 당시 학교에는 2층 교무실에 1층 행정실이 올라와 통합되어 모두가 불편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교무·행정 통합모형을 물리적 보다는 업무적으로 통합하는 것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이를 위해 교무전담실을 꾸리게 되었다. 당시 교직원 사이에는 H 부장 선생님이 그다음 해에 선임 부장을 맡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그렇게 되면 교무전담실에서 자신의 업무가 과중해진다는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학교조직 재설계에 비협조적이면서 이를 저지하려는 움직임마저도 건너 듣게 된 것이었다.

C 고등학교로 옮겨와서 2018년 겨울방학 때, 부장 선생님들 중심으로 새 학년도 교육계획을 토의하기 위해 1박 2일 워크숍을 가졌다. 여기에서 학교교육이 좀 더 발전하도록 설계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우리들의 역할에 대해 논의를 이어가던 중, 학교 안팎의 공식적인 자리에서 ‘호형호제’하는 학교문화, 그 중 ‘호형’에 대하여 잠시 격론을 벌인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나온 주장은 “자기보다 연세가 많은 선생님에 대한 예우로서 합당하다”, “학교 사회에서는 선배님으로 호칭하여 존중을 표하는 것이 좋다”, “선생님 자체에 존경이 들어 있으므로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다” 등이 주요 쟁점이었다.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매일 학생들을 마주하며 그들에게 본을 보여야 하는 우리에게 맞는 호칭 문화가 무엇일까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2019학년도를 시작하면서 조직문화 혁신 방안으로 학교에 ‘○○쌤’, ‘○○님’ 등으로 불러주는 ‘수평적 호칭제’를 도입하려다가 한 달 만에 학교 자율에 맡긴 적이 있다. 사실 이 수평적 호칭제는 취업 포털 업체인 잡코리아에서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2017년 초에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수평적 호칭제에 대해서 다수의 긍정적 반응이 있었으나 우리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많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수평적 관계이지 가족적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2018년에 발표된 국립국어원의 ‘사회적 소통을 위한 언어 정책 연구’에 의하면 직장 동료들 간 나이에 따라 ‘형’, ‘언니’ 등으로 부를 수 있으나 이는 사적인 영역에서의 호칭과 지칭이므로 격식을 갖춰야 하는 ‘직장’이라는 상황에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적시되어 있다. 그 직장이 학교라면 더욱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교직 사회에서 호형호제하는 가족관계 중심의 호칭 체계는 가끔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는 듯하다. 호칭으로 공적관계가 사적관계로, 사적관계가 가족관계로 변화되면서 별도 모임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끌어주고 밀어주는 소위 ‘라인’이라는 것을 형성하여, 하나의 집단으로서 변화에 맞서기도 하고,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대변하는 집단으로 뭉치기도 한다. ‘이상한 정상가족’의 저자 김희경 씨는 자신의 책에서 자기 집단만 중시하는 가족주의가 사회로 확대되면서 배타적인 태도가 굳어졌고 타인과 사회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다고 했다.

사회구성원으로 특히, 학교구성원간의 상호 호칭은 중요하다. 어떻게 불러주느냐에 따라 나에게로 와 꽃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배타적 관계를 만드는 독버섯은 싹트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자리에 조직의 온도를 함께 높이는 호칭을 다듬어 가도록 학교공동체가 고민해야 한다. 미래를 지향하는 우리의 학교는 ‘이상한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육인·전 충렬고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