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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명 칼럼] 수에즈 단상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1-04-29 19:00:53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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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오십만 노동자와 10년 공사가 투입된 운하의 마비는 한 척의 선박과 하루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수에즈운하 불통으로 인한 해상물류 마비가 세계적으로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던 지난 3월 25일, 뉴욕타임스가 내린 진단이다. 세기의 토목공사를 통해 건설된 수에즈운하가 이렇게 어이없게 ‘주저앉은’ 것을 꼬집은 것이다.

1869년 완공된 수에즈운하는 이집트 내륙을 뚫어 두 개의 바다를 연결한 인공 구조물이다. 인도양 아라비아해의 연장인 홍해와 지중해의 항구도시 ‘포트사이드(Port Said)’를 연결했기 때문에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 항로다.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된 운하의 건설에는 당시 유럽 강대국 간의 정치적 계산이 있었고, 식민지 시절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이집트 정부가 운하의 운영권을 확보해 오늘에 이르렀다.

운하를 통과한다는 것은 유럽-아시아 항로의 획기적 단축을 의미한다. 운하가 개통되기 전에는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을 우회하는 것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유일한 항로였다. 에너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산업혁명 시기에는 운하를 통해 중동산 원유가 빠르고 안정적으로 유럽에 공급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수에즈운하가 유럽발 산업혁명의 성공적 안착에 기여했다는 역사적 시각은 개연성이 있다. 물론 유럽과 아시아 사이 최단 거리의 해상물류를 제공하는 본연의 기능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당대 최강 해군력의 러시아 발틱함대가 평소 전력만 유지했다면 러일전쟁 당시 쓰시마해전의 승자는 러시아였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수에즈운하가 있었다면 전력 누수의 가장 큰 원인이 된 7개월 항해를 피했다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세계 역사의 축을 바꿀 만큼 지정학적 중요성을 가진다는 이런 관점은, 수에즈운하가 산업 외적으로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지난 3월의 수에즈운하 사태는 여러 관점에서 운하와 산업 사이에 얽힌 역사를 되짚어 보게 만든다.

운하를 이해하려면 해상물류,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산업구조에 대한 이해가 먼저다. 선박 좌초 등의 불가항력적 원인도 있지만, 운영권을 가진 국가가 마음대로 운하를 봉쇄하기도 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폐쇄사태가 발생하면 해상 물류망은 대혼란에 빠진다. 근대 산업사회 이후의 글로벌 해상 물류망은 다양한 종류의 방대한 화물들을 운송하는 전용 선박과 이들 선박을 운영하는 해운업에 의해 완성되었다. 해운 선단 입장에서는 한 번의 항해에 최대한 많은 화물을 최단 시간 내에 운송해야 한다. 화물 운송비 수입과 선박 운용비 지출 간의 간단한 셈법이다.

19세기 말에 등장한 수에즈운하는 해운업계에 최단 항로를 제공했다. 하지만 선박의 크기가 운하의 폭과 깊이를 초과할 수 없어, 선박의 화물 적재량 증대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선주는 발주 선박에 크기 제한을 둘 수밖에 없고 당연히 선박 선택의 폭도 좁아진다. 운하가 항상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의 반증이고, 조선산업 관점에서는 제품군의 외연 확장에 걸림돌인 셈이다.

한편, 1970년대 말 중동전쟁 발발로 야기된 수에즈운하 폐쇄는 유럽과 미국으로의 원유 운송 기능을 극대화한 초대형 원유운반선을 등장시켰고, 대안이 제시된 상황에서 운하의 효용성에 대한 의문은 가중되었다.

이렇듯 원활한 해상물류의 기능 유지를 담보해 주는 것이 운하의 존재 가치이기에, 이용자들은 ‘만에 하나’를 대비한 운하 대안을 항상 고민해 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대안의 존재 여부보다 대안 실현을 통해 발생하는 새로운 부가가치가 산업적으로는 훨씬 중요하다는 점이다.

초대형 원유운반선 출현의 계기는 수에즈운하 폐쇄였다. 일본은 운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그들이 보유한 초대형선박 건조기술을 선박 시장에 적극적으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원유운반선 시장 독점체제가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조선산업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고 조선산업 석권의 기틀을 잡는다. 국가간 경쟁과는 별개로, 초대형 원유운반선의 등장으로 조선산업 규모가 ‘퀀텀점프’ 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한동안 세계 언론이 주목하던 수에즈운하 폐쇄 사태가 해결되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대형 선박들은 다시 운하를 오간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교류가 수월하지 못한 시기에, 수에즈운하 폐쇄는 글로벌 물류 마비라는 점에서 세간의 시선을 끌 만한 이슈였고 원인분석과 대책 마련도 곧 뒤따를 것이다. 다양한 시각이 있겠지만 한 가지 보편적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불안한 기술은 개선하면 되지만, 그 상황의 해결이 끝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건 인과관계가 있고, 인과관계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간접적 이해득실 환경에 놓이는 일도 있다. 에버기븐호를 일본 조선소가 건조했다는 이유로 한국 조선산업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현시대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기여하는 분야가 운하 통과를 가능하게 해주는 선박 건조뿐일까. 수에즈운하 사태가 불러올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긍정적 나비효과는 뭐가 있을까. 선도적 노력 없이 반사이익만 기대하는 위인들을 역사는 ‘하수’라 부른다.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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