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본사를 둔 공공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지역 외면’ 기조가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영진위는 이미 실정법과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취지를 저버리고 수년째 서울에서 신사업을 벌여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그런데 최근까지 그 시설의 부산분원 설치 요구마저도 거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시설은 신진 작가 등 창작 인력을 양성하고 영화 기획 개발을 지원하는 ‘기획개발전문역량강화지원센터(씬원·S#1)’이다. 한 마디로 영화 산업 관련 인재를 영진위 이름으로 육성하는 곳이다. 아시아 최고의 ‘영화 창의도시’를 지향하는 부산 비전과도 부합한다. 그런데 영진위는 본사가 있는 부산이 아닌 서울에 일방적으로 설치하더니 분원 설치마저 못하겠다고 버티는 것이다.

영진위가 독단적으로 2년 전 서울 센터를 설치했는데도 시가 “분원이라도 설치하자”고 수차례 제안하고 있는 것은 절박함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영화 생태계를 탄탄하고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특히 인재에 대한 갈증이 심하다. 실제로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구심점 삼아 영진위, 후반기작업센터, 기장 종합촬영소 등 영화 관련 하드웨어는 어느 정도 갖춰 가지만, 소프트웨어라고 할 전문 인력과 기업은 부족하다. “영화 드라마 웹툰 등을 다방면으로 연계하는 콘텐츠 시나리오 인재 양성 기능을 부산에서 살리자”는 시의 제안 취지에도 이 같은 갈증이 녹아 있다. 시는 후반작업센터 시설 일부를 공간으로 제공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혔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이 참담하다. 영진위는 “부산은 수도권과 같은 영화 생태계가 없어서 기존 영진위 사업을 똑같이 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런 태도야말로 영진위의 부산 이전 취지를 몰각시킬 뿐 아니라 존립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화 생태계 구축에 목마른 부산시를 향해 ‘함께 힘을 보태자’고 하는 것이 부산에 본사를 둔 영화산업 진흥 기관이 갖춰야 할 당연한 자세 아닌가. 의기투합은커녕 오히려 “부산은 생태계가 부족하니, 서울에서만 사업을 펼치겠다”고 하는 것은 발은 부산에 두고 눈과 머리는 서울에 두겠다는 이중적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이전 공공 기관의 완벽한 지역화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수는 있다. 그러나 기관과 종사자들이 지역으로부터 받은 혜택 또한 적지 않다. 시설 부지의 헐값 제공과 혁신도시 주거용 주택의 특혜성 제공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다. 이는 조속한 지역화를 응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언제까지 ‘서울찬가’만 부를 것인가. 그런다고 영진위가 서울로 돌아갈 일은 없다. 영화를 위해 서부 LA의 할리우드까지 달려가는 미국 전역과 세계의 젊은이들, 즉 ‘할리우드 키드’를 기억해야 한다. 영진위는 어떻게 해야 부산으로 달려오는 아시아의 ‘부산 키드’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 첫 열쇠가 부산시와 협업한 ‘씬원’ 분원 설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