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 진해구 일대를 조선시대에는 웅천이라 불렀다. 예부터 두동마을 뒷산에 도자기 가마터가 흩어져 있어서 사금파리가 산기슭에 노출돼 있었다. 특히 굽 부분에 유약엉김 현상이 있는 사발파편들이 있었다. 유약엉김 현상은 일본말로 카이라기(梅華皮)를 말한다. 16세기 후반 조선에서 만들어져 부산왜관을 통해 현해탄을 건너 말차사발로 사용됐다. 유약엉김의 특별한 조형성으로 일본에서 유행하던 와비차의 상징차완으로 부상하면서 그 가격도 금 250양을 호가했다. 현재 우리 화폐 단위로 환산하면 사발 1점에 6억 원의 거금이다.

이 사발을 일본에서는 이도(井戶)차완이라 부르지만 우리말 이름이 없어 필자는 웅천에서 생산됐기 때문에 웅천사발이라 부른다. 이 사발이 문헌에 최초로 기록된 것은 선조11년(1578)이며 선조30년(1597)까지 19년간 일본 각 지역에서 30회에 걸쳐서 다도 고수들이 모여 웅천사발로 차회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켜놓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큐슈의 나고야(名護屋)성에서 두 차례의 차회를 연 기록도 있다. 그는 웅천사발의 광적인 애호가로 조선 침략의 목적이 웅천사발을 수집하기 위한 또 하나의 수단이었다. 필자의 연구로는 왜란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웅천 옛 가마터에서 생산돼 일본으로 건너간 웅천사발은 10개 정도가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일본에 전시된 140여 점이나 되는 많은 웅천사발 정체들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줄이면 모두 모방품이다. 일본에서는 이것을 중흥명물이라 부르는데 대마도 큐슈 야마구치 등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웅천사발을 일본에 유행시킨 장본인은 16대 대마도주 소우요시시게(宗義調)다. 그는 1553년 도주가 되었는데 때마침 일본에서는 새로운 사조인 와비차가 대두돼 실천철학으로 크게 유행하는 시기였다. 차사발도 구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를 추구할 즈음 조선사발들을 연구하고 수집해 일본에 보급하던 중 대박이 터졌다. 1580년대 초반 웅천사발의 가격이 하루아침에 급상승한 것이다. 요시시게의 뒤를 이어 대마도주가 된 요시토시(宗義智)는 오리지널 웅천사발 10개를 일본에 팔아넘기는 요시시게의 수법을 익혔으나 1590년 이후에는 웅천에서 이 사발의 생산이 종결되어 구할 수 없었다.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은 함대를 이끌고 경상도 해역을 누비며 왜선들을 근거리로 접근시켜 총통을 발사해 뱃전을 깨 부셔 순식간에 수십 척을 침몰시키는 전술로 해전 40회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남해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한 장군은 한산도로 진영을 옮겨왔다. 1594년 9월 조정에서는 삼도수군통제사를 신설하고 장군을 겸임케 했다.

한산섬에 달이 밝은 밤이면 우국충정에 잠을 이루지 못해 수루에 홀로 앉아 기록했을 선조27년(1594) 1월 24일 ‘난중일기’에는 ‘대마도주 요시토시가 지금 웅천에 있다고 하지만 자세하지 않다’고 기록했다. 4월18일(맑음)조 기록을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보충 설명하면 웅천 주둔 왜군들에게 포로로 잡혀있다가 ‘새벽에 탈출해 도망 온 조선 백성들에게 왜적의 적정을 자세히 물어보니 요시토시의 선발 수색대는 웅천 땅의 제덕동에 주둔해 있고,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사단의 지휘소는 인접한 남문동에 있다’고 한다. 제덕동은 조선 초기로부터 3포의 하나인 제포왜관이 있었고 경상 연안에서는 대마도와 최근 거리에 위치한 포구이다.

요시토시가 왜란 중에도 노예로 팔기 위해 사로잡은 수만 명의 조선인과 각종문화재 가축 알곡 조선사발 등 전리품을 대마도로 옮기기 위해 제포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그가 제포에 주둔한 첫째 목적은 웅천사발의 생산지로 알려져 있던 두동 뒷산 가마터에 묻혀 있을지도 모르는 웅천사발의 실패작을 수집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나고야성에서 노심초사 새로 수집된 웅천사발을 기다리는 히데요시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웅천가마터가 있는 제포에 주둔한 것이다.

오늘날 진해구 두동의 웅천 옛 가마터는 1997년 경상남도에서 지정한 기념물 제160호이다. 2001년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경상남도가 시굴조사했다. 보고서에 ‘시굴 시 이미 벌집 쑤시듯 누군가가 파헤쳐 교란되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요시토시가 제포에 주둔하여 수년간 병사들을 동원해 웅천가마터를 시굴하여 찾아낸 웅천사발파편은 5조각이었다. 아가리 부분의 4cm 정도인 파편을 끝내 찾지 못했음으로 대마도에서 초벌된 파편을 끼워 맞춰 웅천사발로 복원하는데 3년이나 걸렸던 것이다. 1597년 오사카성으로 옮겨와 오매불망기다리던 히데요시에게 상납되었는데 이 웅천사발이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츠츠이즈츠(筒井筒)이다.

이 사발로 오사카성에서 1월 24일 생에 마지막 차회를 개최했고 이듬해 히데요시는 죽었다.

㈔부산문화유산연구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