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해양강국 국민토론회가 있었다. 필자는 주최 측으로부터 내빈으로 참석해 줄 것을 요청받고 갔다가, 프로그램에도 없던 토론을 하게 되었다.

다양한 주제가 발표되고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해운업계에 1조 원 가량의 과징금을 부과하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처사에 대하여 강한 비판으로 시작된 몇 분의 인사 말씀이 뇌리에 더 깊이 남았다. 사실 깜짝 놀랐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해운산업은 무역을 위해서는 필수 산업이지만, 경영여건이 어려운 시기가 더 많아서 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업계, 학계는 물론이고 NGO까지도 해운업계에 대한 응원과 지원이 늘 넘치는 것 같다. 아마도 운임에 대한 담합으로 의심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난 9일 뉴스를 보니 과징금 7000억 대 부과 위기라는 등 해운협회에서 공정위의 조사에 대하여 강력히 성토하는 기자회견을 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예상대로 운임에 대한 담합행위에 대한 제재가 가시화된 것 같았다. 토론회에서 필자가 놀란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해운분야에서는 최고의 학자들이 모였는데, 해운동맹의 허용이나 정기선 해운에서의 담합을 관습법이나 관습국제법으로 이해하는 듯이 보여서 다소 놀랐다.

전통적으로 정기선 해운은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선복과잉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해운동맹이라는 일종의 카르텔을 통하여 경쟁을 제한해 왔다. 그러나 카르텔은 독점금지법의 위반에 해당하기 때문에 당시 화주국의 입장에 있던 미국이 해운동맹을 금지하기 위해 하원에서 알렉산더위원회를 구성하여 해운동맹의 금지를 연구하면서 제도권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연구결과 정기선해운의 경우에는 지나친 경쟁이 오히려 경영의 위기를 가져오고, 자유로운 무역을 저해한다는 반대의 결과가 나오면서, 엄격한 요건 하에 해운동맹을 허용하도록 하고, 엄격한 요건의 충족을 조건으로 독점금지법의 적용을 면제하도록 하는 1916년 해운법의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후 1984년 해운법과 1998년 외항해운법으로 개정이 되면서도 독점금지법의 적용제외 사유를 명확하고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또 해운동맹의 허용이나 독점금지법의 적용제외는 자국의 해운기업, 화주 보호 및 자유경쟁의 보장 등 국가마다의 사정에 따라 자국의 국내법으로 기준을 정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관습법이나 국제법의 영역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사안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제40조 제1항 위반의 문제가 되는 듯이 보인다. 해운업계에서는 해운법 제29조에 따라 공동행위를 한 것이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의 위반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우선 입법론적으로 보면, 해운법 제29조 제5항의 규정에 비추어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배제한 것은 아닐 뿐 아니라, 공정거래법 제40조에 대한 적용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해운법 제29조에서 그 목적과 공동행위의 요건 심사절차 등을 좀 더 자세하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공정거래법의 적용이 제외된다거나 효력을 제한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해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입법 과정에서는 공정거래법 제63조 제1항에 따른 부처간의 협의가 있었어야 하고, 법의 적용 과정에서도 당연히 공동행위의 승인에 대해서도 동조 제3항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에 통보조치가 있었어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 해운법 제29조의 입법과정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겠으나, 조문만 볼 때는 해석상 혼란이 생길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업계의 입장에서는 현행 해운법 제29조는 공정거래법 제40조에 대한 예외로 볼 가능성이 높다. 또 동조 제2항의 신고의무가 2008년부터 신설된 것으로 볼 때, 적어도 이 조항이후 한 번도 제재조치가 없었다면 당연히 공정거래법의 적용예외로 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입법과정에서 부처간 협의가 부족했거나 입법 조치가 다소 부실해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기업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정책과 해당 법률을 믿고 따랐다면 불이익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근본적인 입법조치와 부처간 협의는 추후 하더라도 우선은 해양수산부가 나서서 부처간 정책조율을 하고 그것도 안 되면 총리실이나 청와대라도 나서서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조율해야 한다.

미국이나 EU에서도 점점 독점금지법의 적용예외를 줄여 나가고 있고, 특히 운임에 대해서는 일체 담합으로 의심받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최근 수십년간의 추세이다. 운임에 담합으로 의심받는 행위가 있었다는 것은 해운선진국으로서는 다소 체면을 구기는 상황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정영석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