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한국요리사를 쓰자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안순환(1871~1942)이다. 안순환이 낯설다면 ‘명월관(明月館)’은 어떤가? 한국 최초의 근대식 요릿집이다. 서울 동아일보사 사옥 자리에 있던 명월관은 1909년 개업 이래 파란곡절을 거치며 한국전쟁 때까지 존속한, 한국을 대표하는 요릿집이었다. 안순환은 바로 명월관을 만든 사람이다. 그는 구한말 궁중의 음식을 책임지는 전선사장(典膳司長)으로 있었으니, 요리에 조예가 깊었던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으로 인해 왕정이 붕괴되자 궁중의 요리사들이 시정으로 흘러나온 것이 프랑스요리 발전의 한 계기가 되었다고 하거니와, 한국의 요리 역시 조선왕조의 쇠락과 상당한 관계가 있다고 하겠다.
안순환은 잡지 ‘별건곤’ 1928년 5월 호에 ‘조선요리의 특색’이란 글을 기고하는데, 이 글에 의하면, 그는 ‘구한국시대에 오랫동안 전선사장으로 있었고, 수십 년 동안 요리업에 종사하여, 실제 조선의 음식을 다 만들어보고 연구도 했던 사람’이었다. 곧 20세기 전반 한국을 대표하는 요리사라고 할 만한 사람이다.
‘조선요리의 특색’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안순환이 일본요리, 중국요리, 서양요리를 비교하는 장면이다. 그는 일본에 가서 궁내성(宮內省)의 요리(곧 일본 왕실의 요리)를 만드는 것을 시찰하기도 하고, 중국요리 서양요리도 대개는 자기 손으로 만들고 먹고 연구도 해 보았다고 한다. 이 경험에 입각해 그는 각 나라의 요리를 평가한다. 중국요리는 비교적 발달되어 가지 수도 많고 요리방법 식재료 등이 다양하며, 서양요리 역시 상당히 발달한 것으로 영양분도 많은 것 같다고 평가한다. 일본요리에 대해서는 좀 평가가 야박하다. 곧 ‘일본요리도 담박하기로는 꽤 담박한 듯하다’고 하여 ‘담박한 맛’ 외에 달리 평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조선요리, 곧 한국요리에 대한 평가다. 그는 조선요리는 중국요리 서양요리 일본요리보다 우수한 특징이 몇 가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조선이 사계절이 뚜렷한 것처럼 요리도 철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떡도 봄에는 송편·색떡, 여름에는 깨인절미 또는 증편 같은 것을 쓴다는 것이다(‘봄 송편’은 이 글에서 처음 보았다). 둘째는 오미(五味, 양념)가 갖추어져 음식이 맛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저절로 식재료의 독기를 제거하고 소화가 잘되는 것, 셋째는 음식의 진열법이 교묘하여 음식을 놓는 방위와 자리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안순환이 강조하는 마지막 특징은, 여러 가지 음식을 한 상에 차려서 한 번에 다 내놓는 것이다. 그는 서양요리는 가지 수가 정해진 음식이 순서대로 나오기 때문에 맛이 있고 실익이 된다고 말한다(낭비가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하지만 그는 ‘남을 대접하는 데는 될 수 있는 데까지 손님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고, 자기 마음껏 이것저것을 다 먹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요컨대 푸짐하게 있는 대로 펼쳐 놓고 손님이 마음껏 먹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외국인들도 한국요리를 대접받을 때 그 풍성함과 찬란하고 교묘한 상차림에 감탄해 마지 않는다는 것이다. 끝으로 요리의 다양성 역시 조선은 중국이나 서양에 못지않다고 주장한다.
‘조선음식을 다소 더 개량만 한다면 아마 세계에 우수한 요리가 될 것이다’가 ‘조선요리의 특색’ 마지막 문장이다. 안순환의 바람대로 한식(韓食) 역시 한류를 타고 급격하게 세계화되고 있다. 20세기 내내 한국인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던 문화적 열등감이 식문화 방면에서도 씻겨나가는 중이다. 반가운 일이다.
이와는 별도로 음식에 관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환경을 파괴하여 만들어지거나, 인체에 안전하지 못한 식재료, 과식과 지나친 미식(美食)을 조장하는 매스미디어, 돈벌이에 혈안이 된 식품산업 등 곱씹어 보아야 할 문제가 숱하다. 또 과식과 미식 정보보다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정보의 제공이 더 절실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 결과 우리의 식탁에 날마다 차려지는, 안전하고 건강한 음식은 다름 아닌 안순환이 세계에 널리 알려질 것이라고 말한 ‘조선요리’일 것이다. 최근 한식이 세계인에게 알려지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써 본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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