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위입니다. 주인은 나를 무척 좋아합니다. 오늘도 주인은 부추전을 한 장 굽습니다.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둥그런 부추전을 마치 피자처럼 커다란 접시에 그대로 담습니다. 그리곤 어김없이 나를 가져와 가로로 네 번 세로로 네 번 자릅니다. 주인도 나도 흐뭇합니다. 모양도 안 흩트리고, 도마에 기름도 안 묻히고, 접시에 금이 간 것도 아니고 깔끔하게 먹기 좋은 크기로 만들었으니까요.
피자라는 말이 나오니 20여 년 전 일이 또 생각납니다. 주인 가족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몇 년 살러 간 일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고맙게도 나를 데려갔습니다. 겨울 방학 때 주인의 아들 친구 세 명이 놀러 왔어요. 피자를 구운 주인은 그날도 어김없이 나를 부추전 자르듯이 부채꼴로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아이들은 나를 벌레 보듯 했어요. 내 얼굴이 얼마나 화끈거리던지. 그런데 주인은 태연했습니다. “이건 문구용이 아니라 음식용이야. 엄청 편리해. 한번 사용해 보겠니?”라고 나를 소개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나를 만져보고 피자를 잘라보고 했지요. 아마 지금쯤 성인이 된 그들은 미국에서 스테이크를 자를 때 나이프 대신 나를 쓸지도 몰라요. 적어도 그들의 아이들에게 스파게티를 잘게 잘라줄 때는 나를 즐겨 쓸 겁니다.
주인은 주방에서 나를 가장 많이 애용합니다. 짭조름한 김이나 기름이 지글지글한 삼겹살을 자를 때는 저도 신이 나지만 빨간 매운 김칫국물이 덕지덕지 묻을 땐 깨끗하고 뽀송뽀송한 도마가 부럽고요, 생선 배를 가를 땐 그 비릿함에 머리가 어지럽기도 합니다. 나는 주방뿐 아니라 서재에도 있습니다. 주방에서보다 몸집이 좀 날렵합니다. 주인은 문학잡지를 개봉하거나 신문 스크랩을 할 때 주로 나를 부릅니다. 잡지 봉투를 열 때는 주인의 설렘이 내게도 온전히 전해집니다. 나는 베란다에도 있습니다. 향기를 듬뿍 뿜어내고 누렇게 된 대엽풍란 꽃대를 자르기도 하고요, 엄청나게 커버린 고무나무를 자르기도 합니다. 고무나무의 끈적함이 내 몸에 묻는 날이 많아져서 내 몸은 좀 무뎌졌지만, 주인은 그런 나의 투박함이 좋대요.
나는 집안 곳곳에서 주로 일하는데 때로는 몇 년째 가만히 누워 있기도 합니다. 주인이 시집올 때 시어머니께서 반짇고리에 넣어주신 묵직한 나는 20여 년을 그냥 누워 있습니다. 어른이 된 상징 같다고 화장대 깊숙이 모셔두고 있답니다. 대신 ‘쪽가위’라는 새로운 나를 가져와 쓰지요. 미국 친구들을 데려와 나를 화끈거리게 했던 아들의 책상에도 내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유치원 입학 때 처음 여기로 온 손바닥만 한 것인데 손잡이에 아들 이름이 투명 테이프로 감싸여 있어요. 또 하나는 왼손잡이인 아들을 위해 어렵게 구한 왼손잡이용입니다. 주인은 추억으로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주인의 감정에도 관계한다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아 참, 나는 자르는 일에 충실하지만, 옛날에는 내 몸을 움직여 소리도 많이 내었답니다. ‘엿장수 가위’ 기억나셔요? 아저씨가 나를 데리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면 조무래기들이 나를 졸졸 따라왔지요. 요즘은 가끔 시골 오일장에서 아저씨랑 함께 각설이 타령을 합니다. 신나게 목청을 높여 온몸으로 한 곡조 뽑으면 나 스스로 뿌듯합니다. 쇳소리가 나지 않도록, 그래서 오래도록 아저씨랑 공연할 수 있도록 엄청나게 노력합니다.
그런데 내게는 기쁜 일만 있는 건 아닙니다. ‘가위표’ ‘가위눌린다’ 하기도 하고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검열할 때 ‘가위질’한다고 하기도 해서 내 이름을 부정적인 곳에 그냥 막 가져다 쓰곤 합니다. 그래서 ‘틀리다’ ‘무섭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상징이 될까 봐 무척 답답합니다. 나는 자르는 일에 충실할 뿐인데 억울합니다. 미용실에서도 수술실에서도 고깃집에서도 내가 없으면 곤란하지 않나요? 요즘은 ‘핑킹가위’ ‘새우가위’ ‘밤가위’ ‘뼈가위’ 등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꿔가며 열심히 뛰고 있어서 하루가 어찌 가는지도 모릅니다. 뼈나 호두 같은 딱딱한 것을 자를 땐 젖 먹던 힘까지도 냅니다.
나는 나를 찾는 곳이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우리 주인에게 하듯 그 누구에게도 손과 마음이 되어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내 역할에 충실한 가위이고 싶습니다.
정희경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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