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당대표로 이준석이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어떤 형태로든 청년들의 목소리가 좀더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다는 면에서 그러하다. 때마침 이루어진 50대와 20대를 대상으로 한 KBS의 표적집단면접(Focus Group Interview)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 조사로 드러난 특징은 ‘이대남과 이대녀’로 대비되는 존재이다. 흔희들 ‘MZ세대’로 통칭되던 이들이 성별(gender)로 다시 나뉜다니 말이다. 이대남(20대 남성)들은 뚜렷하게 보수화되었으며 만약 이러한 경향이 지속된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무섭게 후퇴할 수 있다. 왜냐하면 20년 후의 우리 사회의 주도 세력이 지금의 20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준석은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 ‘용광로’(melting pot)가 아니라 ‘샐러드 보울’(salad bowl), ‘비빔밥’으로 자신의 정치관을 밝혔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얼마나 아름다운 미래가 열릴까? 그러나 그의 샐러드와 비빔밥에는 제외될 재료가 있을 것이라는 염려가 앞선다. 나만 하더라도 비빔밥에 들어가는 고사리가 탐탁치 않다. 그 또한 몹시 꺼리는 재료가 없지 않을 것임을 짐작해본다.

그는 철저히 ‘능력주의’(meritocracy) 신봉자이다. “분배가 시장을 통해 작동해야 한다“고 믿고 ”공정경쟁 토대가 마련된다면 승자독식도 공정”하다고 믿는다며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또한 이준석은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도 자신의 능력주의 입장을 확인해주었다. “제가 가장 먼저 추진할 변화는 공직후보자 자격시험의 구체적인 설계와 토론배틀, 연설대전을 통한 대변인단의 공개경쟁 선발입니다.”

그의 화려한 학력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고도 남는다. 과학고에 하버드대 출신이니 말이다. 시험이라면 얼마든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할 것을 확신하기에 그가 능력주의를 최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의 책 ‘공정한 경쟁’에서 그는 중학교 시절 “오직 공부로 서열이 매겨진 무한 경쟁”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다고 회고한 것은 그가 뼛속 깊이 능력주의자임을 상기시킨다.

그런데 ‘이대남이 밀어올린 이준석’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시중에 돌고 있다. 그들의 절망이 구체적으로는 기회의 불평등, 소득 불평등,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일 것이다. 그런데 촛불로 밀어올린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불신이 깊게 자리했고 마침 이준석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것 같은 ‘든든한 형님’쯤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을까. 이대남들에게 이준석은 능력주의와 안티 페미니즘에 공명하는 까칠한 형님으로 비쳤을 것이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인기 강사로 상종가를 치고 있는 최진기 선생은 영화를 통해 인문학의 세계로 쉽게 접근하도록 돕고 있다. 그의 저서 ‘최진기의 거의 모든 인문학 특강’은 이준석의 ‘공정한 경쟁’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최진기는 영화 ‘타이타닉’을 예로 들어 존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을 거론한다. 과연 누가 먼저 구명보트에 올라타야 할까? 아마도 이준석이라면 선장이 먼저, 다음은 승무원들이, 다음은 1등실 승객들이 타야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세월호 선장의 이름이 떠오른다. 그 책에서 존 롤스는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을 정의의 원리로 제시한다. “서로를 모르는 상태라면, 즉 내가 승무원으로 태어날지, 남자로 태어날지, 누구로 태어날지 모르는 상태라면 여자와 어린아이를 먼저 태우자는 데 동의할 수 있으리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단 먼저 죽을 것 같은 여자와 어린아이를 우선 보호하자는 겁니다. 이런 이들을 롤스는 사회적 소수자, 약자라고 합니다.”

1990년대 파르마 대학에서 연구하던 신경생리학자인 자코모 리졸라티(Giacomo Rizzolatti)와 동료들은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를 발견한다. 거울 신경세포는 특정 행동을 직접 수행할 때 뿐만 아니라, 타인이 동일한 행동을 수행하는 것을 관찰할 때도 역시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를 의미한다. 여당인 민주당의 거울 신경세포가 활성화 될 것이다. 결국 청년들의 분노는 이준석의 등장으로 집권당의 귀에도 닿을 것이다. 그들 또한 고등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이므로.

김해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