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집이 많은데 왜 나는 내 집이 하나 없어서 여태 이 모양, 이 꼴로 사는지 모르겠다. 진짜 어이없어.” 허튼 짓 하지 않았고 큰 욕심도 부리지 않았으며 하루하루 성실히 살았는데, 집도 절도 한 칸 없다며 나빵원이 울부짖으며 하는 말이다. 나빵원? 가진 거 하나 없다고 잡지사 대표가 붙여준 드라마 여주인공의 별명이다. 요즘, 즐겨보는‘월간 집’이라는 드라마다. 집에서 사는(live) 여자와 집을 사는(buy) 남자의 내 집 마련 로맨스를 그렸단다. 욜로족, 재건축 바라기, 부동산 하락론자, 청약조울증 등 집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가진 인물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빵원의 울부짖음에 느닷없이 눈물이 빵 터지고 말았다. 집 없는 사람들의 설움이야 오죽할까. 예전에 살던 집 생각이 났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그 집은 30년이나 된 낡고 오래된 집이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할라치면 민달팽이가 소리 소문도 없이 나타났다. 한 두 마리가 아니었다. 습기가 찬 까닭이었다. 잠을 자다 뭔가 이상해 눈을 떠보면 바퀴벌레가 내 다리 위로 신나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아무 물건이나 집어 던져 녀석을 처단 했다. 무서움에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또, 어떤 날은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데 주먹만 한 쥐가 나타난 적도 있다. 괴성을 지르며 칼을 든 채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쥐는 바퀴벌레보다 더 무섭다. 녀석(강아지 달)을 키우기에도 집은 비좁았다. 이사를 가는 것! 간절한 소망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집은 재건축 바라기였다. 하지만 이사를 가자니 오래된 집이라 집이 잘 나깔까도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눌러 앉자니 달팽이와 바퀴벌레, 쥐와 동거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칠 지경이었다. 집값으로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이 됐다. 게다가 집을 둘러싸고 서로의 이해관계까지 얽혀 있었다. 난감하고 복잡했다. 내 집 하나 없어 이런 꼴을 당하나… 엄마가 돌아가신 집에서 울고 또 울었다.

우여곡절 끝에 소형 아파트를 얻었다. 낡고 비좁은 집과의 이별에 기뻤다. 무엇보다 깨끗한 집에서 아버지를 모실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매일 같이 청소를 했다. 다육이도 키우고 사진들로 집을 꾸몄다. 누군가는‘자기애’로 가득찬 집이라고 했다. 뭐라고 하든 괜찮았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든 집이었다. 아버지는 이 집에서 5년을 살고 가셨다. 여전히 그 5년간의 흔적이 집안 곳곳에 남겨져 있다.

옛 사람들은 집도 가족처럼 모두 함께 돌보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의 의미도 많이 달라졌다. 하이데거의 ‘건축론과 집의 의미’에서는 집이 거주하는 곳에서 재산증식 수단이 되어 버렸다고 말한다. 사는(live)집에서 사는(buy)집이 된 것이다. 영끌을 해서라도 집을 바이(buy)해서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삼는 세태에서 하이데거가 말한 ‘포이에시스’( poiesis, 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주체가 참되다고 느낀 세계를 표출하는 활동)적인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 현대 사회의 바람직한 집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행스럽게도 각종 매체나 건축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집에 사람이 종속되는 관계에서 탈피해 사람이 공간의 주체가 되는 추세로 주거 형태가 변하고 있다고 한다. 홈오피스, 홈카페, 홈트룸 등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표현하는 걸 봐서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영끌해서 장만하지 않아도 되는 집, 편리함보다 불편함이 있더라도, 나름 만족해하며 살 수 있는 집, 그런 집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왜 그럴까.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얼마 전, 강아지 달이와 사는 집에 동거인이 생겼다. 곰이(빅베어)와 오백이 언니(부모님이 동물원을 운영함. 원숭이 오백이를 키운다고 붙여진 별명), 4명이 함께 지내고 있다. 비둘기처럼 다정한 이들이 머무는 집, 새로운 가족이 나를 반겨주는 집, 그래서 즐거운 나의 집이다.‘집은 삶의 보석상자여야 한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집에 대한 정의다. 나에게 집은? 부모님이 내게 주신 보석상자다. 열어보니 너무도 귀한 선물이 있었다. 그것은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과 헌신이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