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 13개 회원국에 러시아를 비롯한 비(非)OPEC 10개 산유국이 함께 하는 ‘OPEC+회의’가 흔들린다는 소식에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이 회의는 원유 생산량을 늘리려는 ’증산‘ 계획을 정하려는 모임이었는데 이것이 결렬됐으니 유가가 오르는 것이다. 회의 결렬에는 여러 이유가 언급되는데 그 중 핵심은 아랍에미리트(UAE)의 반발이 컸다고 한다. 아직 구체적인 추후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으니 국제유가는 좀 더 출렁댈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미국과 이란과의 핵협상이 잘 풀리지 않고 있어 이란산 원유가 시장에 나오기도 힘들어 보인다. 원유 수급이 계속 ‘타이트(tight)’ 해진다는 뜻이다. 트럼프 행정부였다면 당장에라도 미국 세일 원유를 출동시키겠지만 지금은 ‘친환경’을 최우선시 하는 바이든 행정부이다. 미국은 30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원유를 깔고 앉은 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배럴당 72~74달러 수준(WTI 기준)인 국제유가가 1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도 한다.
그런데, 향후 국제유가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통찰하는 사람도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그 누구보다도 산유국은 자국 소유 원유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 이제 세상은 탄소 중립에 신재생에너지 시대로 흘러갈 것이고 이것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시대 소명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이 원유를 갖고 마지막으로 뽑아먹을 수 있을 만큼 최대치를 가지려고 할 테고 그 결과 엄청난 ‘고유가 시대’가 올 것이란 주장이다.
정부가 아무리 휘발유·경유차를 규제하고 전기차를 홍보해도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000원이라면 사람들은 최대한 내연기관차를 유지한다. 반면, 기름값이 리터당 2000원, 2500원, 그 이상으로 오른다면 “이럴 바에야 돈 좀 들이더라도 전기차로 바꾸자”며 너도 나도 자동차 교체에 나설 것이다. 그래서 ‘석유시대’의 마지막은 엄청난 고유가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이를 기술적 분석으로 해석해보자. 바로 일명 ‘쌍봉(double top)’ 이론이다. 어떤 기업이나 상품의 시세도 완전히 죽을 때는 ‘외봉’으로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전 고점을 다시 찍고 쌍봉을 만든 후에 그 운명을 다한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상 국제유가의 전 고점은 얼마였을까. 2008년 7월의 배럴당 146달러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배럴당 140달러는 한번 더 볼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2008년의 악몽이 온몸을 깨운다. 당시를 돌아보면 2008년 1월만 해도 배럴당 70~80달러였던 국제유가가 급등을 시작하면서 그해 7월 140달러대까지 솟구쳤다. 그리고 이때의 유가 폭등은 당시 인플레이션을 촉발시켰다. 대한민국 주식과 부동산이 온통 뜨거웠던 2007년 물가상승률은 평균 2.5% 였다. 어쨌든 2%대로 막아냈던 물가는 이후 2008년이 되면서 원유 및 기초원자재 가격 폭등 여파로 4.7%까지 급등했고 그 해 여름엔 거의 6%대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나왔다.
그리고 이런 순간적인 인플레이션은 금리 급등으로 이어지고 그 유명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시장을 건드리고 이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순간 붕괴되는 세계금융위기로 이어졌던 것이다. 분명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 부동산과 여기에 얽힌 파생상품 시장이 무너지면서 터졌지만 그 시작점에는 바로 유가 폭등이 있었다.
물론 이쯤에서 국제유가가 다시 하락할 것이란 의견도 있다. 가령 내일이라도 이란이 핵 협상에 복귀하고 미국이 제재를 풀면 이란산 원유가 풀릴 것이고 공급에 숨통이 트인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 베네수엘라도 있다. 미국이 허락만 한다면 중동산유국과 별개로 베네수엘라 원유도 시장에 나올 수 있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가 입장을 바꿀 수 있다. 일시적으로 친환경 정책 기조를 외면하는 것이다. 그럼 미국산 세일도 가세할 것이고 이런 기대감으로도 유가를 급락시킬 수 있다.
그러나, 난 이미 고유가 시대는 출발했다고 본다. 앞서 말했지만 그래야 전기자율주행차 시대가 더 빨리 오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이고, 2008년 여름처럼 이후 찾아올 수도 있는(?) ‘거품 붕괴’가 맘에 계속 걸린다. 석유시대의 종말.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은 확실하다.
경제 칼럼니스트·진 투자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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