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어느 바다에서 다리가 32개인 괴물문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8개여야 할 다리가 32개니 괴물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진 속 문어 다리를 보면 상처를 이겨낸 아픔의 흔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어는 적에게 다리를 뜯기거나 배가 고플 때 자기 다리를 뜯어먹기도 한다는군요. 그 자리에 새 다리가 난다지만 그만큼 살아내기 힘들었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뜯긴 곳에 여러 개씩 밀어올린 작은 다리들은 문어가 겪었을 절박함이 아닐까요.

“‘나의 문어 선생님’ 보셨어요?” 언젠가 C기자로부터 영화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문어(文魚)라는 이름이 뿜는 ‘먹물’과 먹물이 밀어내는 ‘지식’ ‘선비’ ‘글쟁이’ 같은 단어들을 만졌습니다. 몸에 먹물을 지닌 두족류들이 더러 있지만 이름에 ‘글월 문(文)’이란 글자를 가진 것들이 없기 때문일까요. 거기에다 따라붙은 ‘선생님’이란 호칭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뒤늦게 영화를 찾아봅니다. “흔히들 문어는 외계생명체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문어를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인간과 닮은 점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죠.” 남아프리카공화국 ‘폭풍의 곶’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은 이렇게 주인공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파도가 서늘하게 뒤집어지는 화면이 열리고, 먼 외계에서 들려오는 듯 두근거리는 배경음악이 해조류 숲을 흔들면 문어 한 마리가 나타납니다. 둥근 몸통에 붙은 다리들을 뒤로 모아 안개 속 해조류 숲으로 쭉쭉 헤엄쳐 가는 모습이 외계 생명체 같기도 하고 여유로움을 즐기는 어떤 사람을 닮은 듯도 합니다. 영화는 오랜 사회생활로 지친 주인공이 어릴 적 살던 곳으로 돌아와,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동안 해조류 숲에서 만난 문어와 교감하며, 삶의 지혜를 배우고 다시 일어서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문어의 지능이 70~80으로 무척추동물 중에 가장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다의 현자’라고도 한다지요. 주인공과 문어가 서로를 알아가며 친해지는 과정을 보면 문어는 사람 이상의 이성과 감성을 두루 갖춘 것 같습니다. 맴돌며 바라보기, 가까이 다가가기, 손가락 잡기, 손바닥에 얹히기, 가슴에 안기기. 천천히 몸과 마음의 거리를 좁혀가며 인간에게 다가가는 문어와 그 관심을 애틋하고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인간. 둘 사이엔 어떤 의심도 없습니다. 말 한 마디 없어도 눈빛과 몸짓만으로 서로를 느끼고 믿습니다. 두려움과 호기심을 넘어 진정한 신뢰를 쌓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화면 밖에서 두근거리며, 설레며 따라다닙니다.

알을 낳고, 부화를 하고, 그 새끼들을 무사히 세상에 풀 때까지 제 자리에서 식음을 전폐하는 문어의 지극한 모성애는 마지막 자신의 전부를 미련없이 내어놓는 것으로 정점을 찍습니다. 스스로 제물이 되어 파자마상어에 물려갈 때의 처연함은 할 일을 다 한 이의 완성된 표정입니다. 마음의 행간이 깊은 문어가 남긴 기운이 다시마 숲을 넘어 지상의 먼 숲까지 뜨겁게 와 닿을 때 순간 세상이 환해집니다.

셀폰으로 보는 작은 화면이 아쉽지만 뜻밖에 만난 영화로 인해 만남과 관계에 대하여 새삼 생각합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만남은 서로를 변화시키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의 순리를 지키며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문어와 주인공처럼. 예측된 이별마저 담담하고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눈시울이 뜨겁습니다. 만남은 언제나 이별을 품고 있고, 이별은 또 새 세계를 준비하는 까닭입니다.

뜯긴 다리에 멀끔하게 새 다리를 길러내던 문어선생. 가끔 둥근 돌인 듯 몸을 말고 두 다리로 성큼성큼 걷던 문어선생. ‘삶은 이런 것이다’ 온몸으로 보여주며 유쾌하고 용감하고 다정했던 당신은 영원할 것입니다. 구석구석 흘려둔 지혜로운 문장은 대를 이어 세상으로 번질 것이고 역사의 새 페이지로 남을 테니까요. 저기, 안개 자욱한 숲으로 문어인 듯 사람인 듯 달려가는 무리, 보고 계시지요? 저들을 준비한 당신은 진정한 괴물입니다. 고맙습니다. 나의 문어 선생님 My Octopus Teacher!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