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음악 회화 문학 건축 무용 등 여러 분야의 예술을 혼합해 연극 뮤지컬 오페라 영화처럼 창조하는 것을 종합예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어지간한 공연, 영상 등의 문화콘텐츠의 제작과정을 보면 종합이라는 단어보다 융합이라는 단어가 더 폭 넓게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융합이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예술에 기술을 더해 경계를 넘나들면서 제각각 새롭게 연결돼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무대공연인 연극의 경우 글로 써진 작가의 희곡을 바탕으로 분야가 다른 예술가들의 분석으로 해체하고, 해석으로 대화하고, 통합으로 무대화한다. 이 과정에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기술전문가와도 끊임없이 대화한다. 그러나 하나의 장면을 설명하거나 대화할 때 분야별 각기 다른 지식을 기반한 언어는 ‘동음이의어’처럼 미세하게 어긋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연출가의 ‘살포시 감싸 안는 듯한 조명’이라는 주문에 조명디자이너의 머리는 조명기 종류와 색온도 컬러 광량 각도 속도 등을 어떻게 조합해야 할지 고민과 동시에, 연출자의 주관적 언어에 담긴 특수한 표현방식에 대해 주위에 통역에 가까운 자문을 구하는 일도 종종 있다.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은 각자의 영역에 특화된 용어를 사용하고, 서로에게는 외계어처럼 들린다. 융합을 통한 예술창작활동은 언어가 나뉘어진 바벨탑 건설인부가 다시 만나게 되는 것과 같다.
근래 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 프로그램인 PISA의 2021년 ‘디지털 세상에서의 문해력 개발’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만 15세 청소년의 디지털 정보파악능력(사실과 의견을 식별할줄 아는 능력)이 OECD 평균을 한참 못 미치는 점수를 받았다. 문맹률 1% 미만인 나라이며, IT강국인 한국에서 독해력과 디지털 문해력이 이토록 낮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특히나 문해력이 지식정보량 뿐만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대하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이해와 포용을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더욱 놀랄 수밖에 없다. 연극에서 희곡에 대한 낮은 문해력은 상대 배우와의 소통과 직결됨으로 연습과정에서 문해력 부족으로 인한 의미 없는 소모전을 유발하거나 갈등의 주원인이 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해 왔다. 특히나 연극을 삶의 축소판, 작은 사회라고 하지 않던가.
연극공연을 위한 융합과정의 창작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점을 물으면 하나같이 서로간의 소통이라고 말하고, 가장 보람찬 일도 또한 그 소통을 이루어낸 결과물이라고 이야기 한다. 창작의 고통 중 8할은 아마도 소통의 어려움에서 오는 자괴감과 답답함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답답함의 원인이 상대에게 있고, 자신의 앎이 전부인 듯 믿는 것은 얼마나 더 위험한 일인가?
우리는 아프다. 코로나로 인해 아프고, 급격한 변화의 물결 속에 저마다 살아내느라 곳곳에서 식은땀과 열이 오르고 있는 것을 목도한다. 감기처럼 앓고 나면 항체가 생기기도 하지만, 병이 지나간 자리는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어쩌면 한국의 놀라운 발전과 힘은 고난과 극복의 역사 속에 기억된 항체가 융합된 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코로나와 같은 외부바이러스의 영향과는 별도로 급격한 사회적 변화와 기술의 발전으로 미처 챙기지 못한 튼 살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좌우갈등, 페미니즘 갈등, 양극화, 세대갈등 등, 사회적 진통으로 튼 살뿐만 아니라 뼈마디가 쑤시듯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어쩌면 언어를 갈라놓았던 ‘바벨탑 쌓기’처럼 문해력의 차이로 발생하는 문제는 우리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경계를 넘어 무한한 확장성으로 연결된 디지털 세상에 스스로가 문자화된 기록물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즉 문해력이 백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해력은 융합을 통해 새로운 항체를 만들어 내는 과정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융합을 통한 치유의 시대를 향해가야 한다. 코로나로부터의 치유, 사회적 갈등 완화를 위한 치유의 길을 제시해야 할 때다. 그렇다면 문화예술은 무엇을 해야 할까? 감기를 앓는 자식을 위해 아궁이에 군불을 때고, 솜이불을 발끝까지 꼭꼭 덮어주셨던 어머니처럼 저마다 서로에게 어머니가 될수 있도록 문화예술은 아궁이가 되고, 군불이 되고, 솜이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은 공유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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