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현자들은 산속의 오래된 절이나 수도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 인터넷 안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누구나 어느 정도는 다들 주관이 강해서 특정 분야 전문가의 이야기라고 다 곧이곧대로 듣지는 않는다. 몇 가지의 일간지와 세 종류의 공중파로 여론이 조성되던 과거와는 달리 본인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인터넷이나 종편에서 찾아 보거나 들을 수 있다. 그러면서 이미 가지고 있던 확증 편향은 더 심해진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여론이 첨예하게 다투던 주제도 어느새 온데간데 없이 금방 사라지고, 다른 주제로 다시 격렬한 여론 전이 일어난다. 불과 1~2개월 전만 하더라도 수술실 CCTV를 설치하는 것이 환자의 안전보장에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주장하던 사람들과 수술실 CCTV가 설치되면 소신있는 진료를 더 이상 할 수 없으며, 안그래도 지원자가 없는 우리 외과 같은 과들이 더욱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의 의견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들의 관심사가 그사이 변한 것일까? 그건 아닌 듯 하다. 어느새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으로 가라앉아 있다가, 다시 기회가 되면 타오를 주제이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이 수술실 CCTV에 대해 차가워진 머리로 고민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 생각으로는 수술실 CCTV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우리 의사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두 가지 큰 변화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의사, 특히 외과의사는 마취된 환자의 몸에 조작을 가하기 때문에 의사·환자관계가 다소 일방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수술실이라는 곳은 외과의사들에게는 일종의 전쟁터, 또는 신성한 의식을 행하는 성역이라는 식의 권위가 존재하는 곳인데 이러한 외과의사의 권위나 수술실의 성역화는 모든 영역에서의 탈권위를 지향하는 현대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 듯 하다. 물론, 몇몇 의사들의 비위가 이런 ‘탈권위화’에 가속을 가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런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수술실 CCTV는 논의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제는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교통사고가 일어나면 블랙박스를 확인하는 것이 1순위이다. 예전처럼 현장보존하고 타이어 자국에 페인트칠하고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강력범죄 검거율도 97%이상이라고 한다. 그것도 곳곳마다 있는 CCTV 덕분일 것이다. 탈권위화와 감시 기술의 발달.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두가지 내재적 원인이다.

실제로 우리 병원에는 모든 수술실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 그 장면을 녹화해서 환자에게 보여줘야할 의무가 없을 뿐이다. 만약 정부가 CCTV 수술 수가를 따로 병원에 이득이 되게 책정한다면, 모든 병원에서 언제 반대했느냐는 듯 최대한 빨리 CCTV를 설치할 것이다. 수가가 지정되어 있지 않아도 벌써 몇몇 병원은 수술 전과정을 CCTV로 보호자들이 볼 수 있다는 것이 자기병원의 홍보수단이 되어 있다. 어쩌면 어떤 유튜버 의사들은 ‘액션캠’을 달고 수술을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외과수술들은 이제 복강경 수술이 대세가 되어있기 때문에 수술 장면을 녹화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것도 아니다. 병원과 의사들에게 자발적으로 설치하게 하느냐, 아니면 법으로 강제할 것이냐의 문제이지 수술실 CCTV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일 듯 하다.

나는 오늘 정말 힘든 수술을 끝내고 대기실에 있는 보호자에게 수술 결과를 알려주러 갔다. “수술은 정말 어려웠지만, 잘 끝났습니다.” 보호자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대답한다. “고생하셨습니다. 환자분 정신차리면 꼭 담배 끊으라고 이야기 좀 해주세요.” 이제 저런 통보만으로 만족할 보호자들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수술은 잘 끝났고, 모든 과정은 녹화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세요.”라고 해야, “수고 하셨습니다”는 말을 듣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것은 기술의 발달이지만, 낭만의 후퇴 혹은 새로운 종류의 ‘신뢰’ 재정립일지 모르겠다.

양산부산대병원 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