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온 적이 있다. 대선 경선 때 아무개를 찍으란다. 그러면서 아무개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설명했다. 통화를 끝내고 무척 화가 나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분 논리는 아주 명쾌해서 듣는 이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다. 아니, 논리가 명쾌하다기보다는 주관이 확고하다는 말이 어울리겠다. 틈이 없다는 말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만든 빈틈 없는 논리에 갇혀 살아가는 셈이다. 어지간해서는 무너지기 힘든 장벽을 둘러 세워놓고서는 ‘신념’으로 포장하는 듯했다.

우리 사회에 언젠가부터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상대에게 강요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졌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온 시민이 들고 일어났던 지난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사상이나 윤리적 가치가 일상에까지 세분화돼 당파적 패거리처럼 산재해 있지는 않았다. 더욱 나은 인간적 품위를 위한 담론들은 당시 열풍처럼 드셌던 경제 발전 논리에 매몰돼 식자(識者)들의 사치나 하품 나는 소리로 치부했을 가능성이 크다. 나라가 급속히 발전하고, 이른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요즘 우리 사회는 오래 전 지식인이나 교양인들이 진지하게 논했던 고담준론의 소재거리가 ‘아래로 내려와’ 너도나도 입에 올리는 시대를 맞이했다.

이런 현상이 어찌 보면 자연스럽기도 하고 마땅한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수많은 시민이 매스컴이나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공유하는 지식과 정보는, 그것의 무게나 의미의 함의하는 비중과 깊이를 손쉽게 삭제하고 단지 표면적인 공리(公理)로 둔갑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어떤 맥락이나 역사성에서 나왔건 한번 표면화된 진술에 대한 고민 없이 곧바로 ‘널리 통용되는 진리나 도리’로 탈바꿈하게 된다. 정치평론가나 문화비평가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TV에 나와 이런 저런 사건이나 현상을 분석하지만, 이도 순전히 주관적인 견해로서 대중에게 설득력을 띠기는 힘들다. 문제는 어떤 ‘사실’이 도저히 공략할 수 없는 막강한 ‘진실’이라는 이름표를 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글머리에 언급했던 사람도 지금 생각하면 ‘사실’을 ‘진실’로 믿고 싶어 하는 부류가 아닐까 싶다. 그가 언급한 대선 경선후보인 아무개도 사람인 바에야 허(虛)와 실(實)이 있다. 하지만 그는 언론에서 거론된 아무개의 ‘실’을 과장되게 받아들여 ‘진실’이라는 성채를 만들고는 다른 의견이나 견해를 애초부터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과 뜻을 함께 하는 이들과 유·무형의 조직을 만들면 요새 흔히 말하는 ‘빠’로서 함께 뭉치며 결속력을 갖추게 된다. 인터넷에 이슈가 되는 기사가 올라오면 수많은 댓글이 달리는데 가장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게 바로, 특정한 신념이나 생각을 공고히 한 이들의 공격적인 댓글이다.

지금도 논란이 식지 않고 있는 ‘페미’ 논쟁도 마찬가지다. 원래 서구사상의 한 조류로 형성하면서 학문적인 담론의 울타리에 머물러 있었던 페미니즘이 최근 ‘혐오’ 현상과 결합해 서로 적대적인 ‘빠’들의 진영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에겐 생각이나 의견이 다르면 흔히 거치게 되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형식인 합리적인 의견 교환이나 토론이 애초 불가능하다. 자신의 생각이 진실하다는 청맹과니식의 독단적인 프레임을 넘어서 급기야 ‘진리’라고까지 믿는 이들 앞에 그 어떤 경우의 해결방안조차 헛소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것도 폭력의 일종이다.

특정 정당에 몸담은 정치인들이 간혹 정당의 정책 방향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소신 있는 정치가란 말을 한다. ‘소신’은 흐름이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지향해야 하는 흐름에 과감히 몸을 던질 때 생겨나는 의식이다. 그러므로 ‘소신’은 대개 공인의 미덕으로 치부하는 일이 있어왔다. 그런데 자기생각이야말로 무조건 옳다는 믿음은 ‘소신’이라기보다는 ‘맹신’, 즉 미신일 뿐이다. 이러한 미신을 신봉하는 자들이야말로 ‘좀비’가 아니겠는가. 좀비는 오로지 한 가지 마음만으로 살아가는, 그야말로 생각이 죽은 존재다. 생각이 죽으면 몸뚱이는 사체나 마찬가지다. 상대를 뜯어먹어야지만 자신의 존재가 증명이 되는 자들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인간이라는 탈을 쓴 좀비들이 들끓고 있다. 자신이 뜯어먹는 대상을 향해 함께 뜯어먹으려고 달려드는 자만이 아군이요, 그렇지 않은 나머지들을 적군으로 돌리려는 자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오래 전 덴마크의 한 철학자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진단한 바 있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맹신으로 비롯한 ‘구분 짓기’는 바로 좀비에 이르는 병이라고. 좀비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이 본 것과 겪은 한 줌도 안 되는 경험을 과신하지 말아야 하겠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