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이 의외로 많은 나라가 일본이다. IMF 보고서를 보면 일본은 올해 국가채무 총액이 1216조 엔(약 1경2488조 원)이나 된다. 작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56%로 베네수엘라(304%)에 이어 세계 2위다. 2019년엔 1위였다. 1980년대까지는 일본도 10%대로 낮았다. 그러나 저출산 고령화로 세금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재정 수요는 급증했다. ‘잃어버린 30년’을 되찾기 위한 확장 재정의 결과가 천문학적인 부채다. 일본은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다. 빚보다 해외 재산이 훨씬 많다. 게다가 엔화는 미 달러처럼 사실상 기축통화다. 정 안되면 돈을 찍어내면 된다. 자산도 없고 기축통화도 아닌 나라가 진짜 문제다.

정부가 최근 편성한 내년도 예산은 604조 원에 이른다. 올해 본 예산(558조 원)에 비하면 8.3%나 많다. 작년과 올해 100조 원대 적자 국채를 발행했고 내년에도 70조 원 이상을 예고했다. 코로나19 대응과 경기부양 필요성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채무의 증가 속도다. 국가채무는 올해 965조 원에서 내년엔 1068조 원으로 불어난다. GDP 대비 비율은 2019년 36.4%에서 2020년 42.6%로 사상 처음 40%선을 넘었고, 올해 47.3%에서 내년엔 50.2%까지 상승할 전망이다. 1인당 나랏빚은 현재 2000만 원대이지만 지금 같은 추세라면 2038년엔 1억 원을 넘어선다는 경고가 나와 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대선 주자들은 퍼주기 공약에 바쁘다.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대출’이 간판인 이재명 경기지사뿐 아니다. “제대 군인에게 1인당 3000만 원 지급”(이낙연), “다섯살 미만 아이에 월 100만 원”(정세균), “청년에 원가주택 보급”(윤석열), “집값 50% 국가와 공동투자”(원희룡) 등 여야가 따로 없다. 재원조달방법은 ‘뜬구름 잡기’ 식이다.

순수하게 자신의 소득을 위해 일하기 시작하는 날이라는 의미의 ‘세금해방일’이 올해는 4월 9일이었다. 이 날짜가 매년 조금씩 미뤄지기는 했지만 문재인 정부 4년간 15일이나 늦춰졌다. 국민의 세 부담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포퓰리즘에 빠진 정치인들은 한결같다. “국민 세금이 결국 국민에게 돌아가는 거니까 문제 없다.” 주머닛돈이 쌈짓돈이라는 말이다. 거짓말이다. 사실은 뒷세대의 주머니를 미리 털어 현세대가 사용하는 거다. 세상에 자식이 빚을 갚으면 된다고 펑펑 쓰는 부모는 없다. 그 염치 없는 짓을 우리가 지금 하고 있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