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일본에 대한 기사를 종종 접한다. 코로나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였느니, 올림픽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였느니, 일본 주요 전자회사의 매출을 합쳐도 삼성의 절반에도 못 미치느니, 신용평가가 한국보다 낮다느니 하는 말들이다.

80년대에 일본을 다녀 온 사람은 ‘코끼리 밥통’을 사오는 게 일반화 되어 있어 대통령이 우리도 제대로 된 전기밥솥을 만들라는 특명까지 내렸다고도 한다. 2019년 수출규제하기 전까지 일본은 뭘 해도 우리보다 월등하여 쫓아갈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나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천상계에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우리가 열심히 한 것도 있지만 일본이 이전 같지 않았던 이유도 컸다.

요즈음 일본 우경화는 걱정될 수준이다. 주위 나라를 침략한 데 대하여는 모른 척하고, 자국의 원폭투하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위안부나 강제 징용을 가리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대놓고 아니라고까지 한다. 의원내각제인 정부도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려고 애쓰기보다 계파별 싸움의 승자가 집권하는 듯하다. 예전 중국의 권력투쟁과 비슷하게. 일본 유학을 다녀 온 선배가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 형사법에서 배울 게 거의 없다는 말도 한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이념을 택하고 민주적 헌법을 제정하였다고 절로 되는 게 아니다.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은 굉장히 민주적이었다. 그런데도 합법적으로 히틀러가 집권하였다. 국민 수준이 민주주의를 운영할 정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독일은 나치 시대 피해를 입었던 주변국들과 유태인 대학살에 대하여 사과하였고 지금도 틈만 나면 사과한다. 1970년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유대인 추념비에서 참회의 무릎을 꿇은 사건은 유명하다. 이를 두고 당시 뉴스 캐스터가 “무릎을 꿇은 것은 브란트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민족이다”고 한 말은 유명하다.

나치 강제수용소 생존자였던 폴란드 총리 유제프 치란키에비치는 이에 감동받아 브란트를 끌어안고 울기까지 하였다. 그 후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는 않겠다”라는 유명한 말을 한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폴란드인들은 서독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나치독일에게 점령당해서 엄청난 고초를 겪은 데다, 독일과 소련의 전투 때문에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추념비 앞에서 무릎 꿇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지켜본 뒤에는 서독에 대한 감정이 많이 좋아졌다. 현 총리 메르켈도 여러 번 사과를 하였다. 그는 올 6월에도 “독일은 나치 독일의 범죄에 따른 변함없는 책임을 인정한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야 한다. 잊어서는 안 된다. 이는 우리가 수백만 명의 희생자와 후손들에게 진 빚”이라고까지 했다.

과거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것은 다시는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 때문이다. 나치 시대가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그 시대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이다.

전체주의와 독재를 강력하게 반대하였던 칼 야스퍼스는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반이라고 했다. 일본은 과거에 대하여 사과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못한 게 없다고 한다. 심지어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을 신사에 두고 참배까지 한다. 잘못한 게 없다고 하며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언제든 힘만 생기면 그 때와 같이 다른 나라를 다시 침략하겠다는 다짐을 계속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시대는 제국주의 시대이고 전체주의 시대였는데 언제든 민주주의를 내 팽개치고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과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사과나 반성 같은 과거사의 일로 발목잡지 말고 앞으로의 발전된 관계를 논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피해를 입힌 주변국들에 대한 입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본은 민주주의가 아닌 제국주의나 전체주의로 돌아갈 수 있다. 일본 스스로를 위해서도 그 시대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우경화가 그래서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우리도 사과와 반성이 필요한데 어물쩍 넘어가는 부분은 없을까. 한 번 돌이켜 봐야겠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