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압둘라자크 구르나(Abdulazak Gurna)이다. 그는 탄자니아의 잔지바르에서 태어나 난민으로 영국에 입국해서 21살 때부터 영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현재까지 총 10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는데 작품 속에서 전쟁과 난민 문제, 이민자의 정체성 문제, 인종차별과 종교 문제 등을 꾸준히 다루고 있다.
구르나처럼 월레 소잉카 또한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작품을 썼다. 이란 출신의 도리스 레싱도, 일본 출신의 가즈오 이시구로도 영어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그려낸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다.
작가의 거처는 작가의 언어이다. 압둘라자크 구르나가 탄자니아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사연이 있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민 가거나 입양돼 떠났다. 나는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망명길에 오른 작가도 뵌 적 있다. 미국에서 문학작품 활동을 하는 한국인 작가들은 크게 두 가지 그룹으로 나뉘는 것 같다. 영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과 한국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 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문학행사에 참석한 경험이 두 번 있는데, 각기 다른 시기였고 확연한 다른 언어를 사용했던 날들이었다.
2016년 4월에 미국에서 주최하는 미국작가모임(AWP)이 로스앤젤레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그때 난 나의 첫 번역시집 ‘Cheer Up, Famme Fatal’ 낭독자 겸 한국시에 관한 학술논문 발표자로 그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수백 명의 작가 가운데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과도 반갑게 어울렸다. 그들 중에는 한국어로 창작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미국 내 여러 문예지에 작품을 실었으며 미국 내 다양한 출판사에서 작품집을 출간한 상태였다.
그 행사장에서 만난 최돈미는 ‘Cheer Up, Famme Fatal’ 의 번역자이기도 했는데 미국 문단에서 영향력 있는 작가로 성장했다. 그는 올해 맥아더 펠로십 수상자로 선정돼 62만5000달러(7억4000만 원)의 무상 지원금을 5년에 걸쳐 조건 없이 지급받게 되었다.
지난 8월 다시 로스앤젤레스에 갔다. 미주한국문인협회 주최로 열리는 문학캠프의 초청강사로 초대받았다. 한해 가장 큰 문학행사이자 축제인 그날을 맞아 이른 아침부터 캠프장 뒤뜰엔 한국어로 발간된 책들과 한국음식 만찬이 준비됐다. 미국 각지에서 작가들이 모였다. 코로나19 상황이었지만 모처럼 해후한 작가들은 한국어로 대화하고 작품을 읽었다. 자신의 시집과 수필집 등을 선물로 주고받기도 했고 한국 문예지에 실린 작품을 보여주기도 했다. 5년 전의 AWP 행사와 판이한 광경이었다. 이민 온 지 반백 년 넘은 작가, 한국을 떠나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작가 등 40여 명의 작가 중에는 불법체류자 신세인 분도 있었을까?
등록되지 않았다는 것은/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고/죽지 않는다는 것이다//아파하지도 괴로워하지도/못한다는 것이다//등록되지 않았다는 것은/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고/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며/궁금해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또한 그것은/함께 떠날 수도/혼자 돌아올 수도/몰래 머물 수도 없다는 것이며/스치는 모든 잔상이 되어/어제는 있었던 것 같고/오늘은 없었던 것 같고/내일은 어찌 돼도 상관없는//오롯이 내가 될 수 없는/우리의 세상인 것이다 - 김준철 ‘등록되지 않은 사람들’
김준철 시인은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이다. 직함은 회장이지만 운전과 청소 등 닥치는 대로 봉사하는 일꾼이기도 했다. 그가 박목월 시인의 외손자, 즉 목월 선생의 외동딸 박동명 씨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위에 인용한 시는 최근 출간된 그의 세 번째 시집 ‘슬픔의 모서리는 뭉뚝하다’에 실린 작품이다.
외국에서 한국어로 시를 쓰는 건 저주이자 축복이다. 이민 작가라면 누구나 글 쓰는 언어를 고민해 선택할 것이다. 모국어를 놓지 않는 건 마음의 거처를 잊지 않으려는 사랑에 기인한다. 어떤 언어로 작품을 쓰는가 하는 문제보다 다양한 문학을 배척하지 않고 수용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한국문학은 디아스포라 문학을 환대해야 한다. 한국어 영어 스와힐리어 등 어떤 언어로 작품을 쓰든 기도할 때는 모국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작가다.
시인·책방이듬 대표·한양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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