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반도에 역사의 먼동이 어슴푸레 밝아 올 무렵인 기원 전후의 시대, 경주지역에는 만주로부터 한 무리의 기마민족이 들어 닥쳤다. 그들이 기마민족이라는 개연성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에 “말(馬)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울고 있으므로…”의 기록과 1926년 10월 ‘서봉총’ 발굴 당시 출토된 토기기마인물상 2점의 형상을 참고하면 그런 사실이 확실해진다. 이 말을 부리는 신라인들은 높이와 너비가 각각 50cm쯤 되는 둥근 금속제 가마솥을 말안장 뒤편에 매달고 다녔다는 사실이 특징이다.
이들이 경주지역에 안착할 때 장정 수로는 도합 6000명쯤이었다. 1000명 단위로 나뉘어 산과 계곡에 흩어져 여섯 촌락을 형성했다. 1000명 단위의 한 촌락에는 대개 100필의 말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 지역에 먼저 살고 있었던 삼한(三韓)인과 전쟁 상황이 벌어지면 6촌의 기병들이 집합해 600명 단위의 강력한 기마대대를 조직할 수 있었다. 상황이 긴박할 때 이 기병대는 한 시간에 30km를 달려갈 수 있었으므로 당시 문화적으로 미개한 원주민들을 제압해 삽시간에 국토를 넓혀갔다.
신라가 건국했던 당시는 서낭당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는 샤머니즘이 유일한 종교였다. 초기 신라의 고분 발굴에서 이름 모를 왕의 무덤이 종종 발굴되는데 이런 무덤에서 주로 금관이 나오며 금령·천마총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런 경향은 왕이 종교적 제사장직을 겸했기 때문이며 초기시대로 올라갈수록 그러하다. 예컨대 ‘삼국사기’에는 신라 제1대 임금을 혁거세거서간(居西干), 제2대 임금 남해차차웅(次次雄), 제3대 유리이사금(尼師今), 제22대 지증마립간(麻立干)이라고 기록했다. 이와 같이 왕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존칭을 바꾸어가며 사용하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간단히 설명하면 초기 신라시대는 전통적 부족국가의 차원에서 부족의 수장이 하늘에 올리는 제사를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라금관은 왕이 제례를 집행할 때만 사용하는 관(冠)이며 초인적 기예로 세밀하게 다듬어낸 돌칼 등은 금관과 같이 일종의 제례 도구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다.
잘 달리는 말로 신라 산천의 시공(時空)을 좁혀가며 국가의 행정력을 높이고 신권까지 거머쥔 강력한 신라 부족장은 백성에게 믿음을 주었으므로 힘을 집약시킬 수 있었으리라! 이런 전통을 잘 유지했으므로 고구려와 백제보다 불교의 유행이 140년 정도 뒤졌는데 진흥왕5년(544) 흥륜사를 건립한 후 급속도로 불교 신앙이 번지기 시작했다.
경덕왕10년(751) 시작된 석굴암 창건의 목적에 관해 ‘삼국유사’(효선 제9)의 기록에는 “김대성이 이세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절을 지었다”는 뜬구름 같은 내용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석굴암 좌상본존불과 본존불을 보좌하는 주요 인물상들인 제석천 범천 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 원형주실 주요 존상들의 진면목을 통해 신라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영구적으로 화강석 돌 위에 아로새겨 표현하고자 한 의도로 판단했다.
첫째, 위에서 설명한 존상들의 눈 생김새를 분석해 보면 나방의 눈썹처럼 가느스름하게 눈꼬리가 추켜세워진 모습으로 통일되어 있다. 맨 처음 신라인들이 말을 타고 서라벌에 들어올 때 얼굴인 퉁구스족들의 눈 생김새에 착안해 그 모습을 디자인한 것이라 판단된다.
둘째, 신라인들이 처음 서라벌에 도래할 때 가져온 전통적 문화 중 의복의 전형적 양식의 원형이 제시돼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본존불이 안치된 원형 공간입구 좌우에 배치된 범천(브라흐마)과 제석천(인드라)의 성별은 남성이지만, 고급 비단인 명주로 전신을 휘감아 치장하고, 특히 범천은 현란한 목걸이를 걸고 있다. 범천은 문신, 제석천은 무신의 복장인데 신라의 문화전성기인 경덕왕시대 신라궁정의 왕과 문무대신들 의복의 원형을 볼 수 있는 귀중한 복식자료이다.
본존불 후면에 배치된 11면 관세음보살의 의복은 신라궁궐 여왕 및 귀족여인들의 복장이다. 실크로 몸을 감싼 위에 정교한 귀걸이와 목걸이로 치장하고, 영락(구슬꿰미)을 늘어트린 모습은 선녀를 연상케 한다. 남녀존상들 등신의 비례는 6 대 1이므로 황인종의 전형적 비례이다. 등신이란 얼굴 길이에 대한 신장 길이를 말한다. 즉 얼굴 길이가 전체 신장 길이의 1/6이라는 뜻이다.
석굴암 본존불의 원형석실 공간에는 그러므로 신라인들의 샤머니즘 문화의 정체성이 만다라의 오의(奧義) 가운데 교묘하게 숨겨져 숨쉬고 있어 그 시대의 전형적 신라인 의상의 자료가 현존하는 전시공간이기도 하다.
(사)부산문화유산연구회 이사장·예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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