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이 넷플릭스 TV 부분 전세계 1위에 올랐다. 지난해 추석에 개봉됐던 ‘오징어게임’에 이어 K드라마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어 뿌듯하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바이러스가 시작된 학교에 고립돼 구조를 기다리던 학생들이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시리즈에 이어 ‘K 좀비’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좀비는 ‘살아 있는 시체’를 뜻한다. 과거 좀비는 일부 마니아들이나 찾던 컬트적 소재였으나, 지금은 영화·애니메이션에 두루 등장하는 메이저 장르로 부상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만든 공포물만 해도 ‘킹덤’ ‘스위트홈’ ‘지금 우리 학교는’ ‘타인은 지옥이다’ 등으로 대부분 시청률에서 선방했다.
이처럼 공포물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와 가족 등 지인 외에는 믿을 수 없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혼돈스러운 시대상을 담아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3년 전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했을 때 사람들은 코로나19가 사람 간 접촉으로 전염되면서 우리 현실이 ‘좀비 영화’ 같다고 했다. 좀비 드라마 속 등장인물처럼 누구나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고 갑작스럽게 친구나 가족과 이별할 수 있게 된 게 현실이다. 이같은 불확실성이 일상화, 만성화하면서 이런 공포물은 계속 인기를 끌 것 같다.
일본의 문학 평론가 하쿠타 나오야의 ‘좀비 사회학’에 따르면 좀비는 냉전 체제가 해체되면서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시대의 새로운 공포를 반영한다.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공적 개입을 줄이는 대신 경제 문제를 민간의 자유로운 경쟁에 맡겨 해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스스로를 방어할 수 밖에 없다. 좀비가 주는 공포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기득권을 잃고 좀비처럼 될 수 있다는 암시가 투영됐다고 본다. 특히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 현대인은 통제당한다는 자각없이 움직이면서 감염체를 퍼뜨리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신조어인 ‘포모’도 이런 현대인의 좀비적 특성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포모는 ‘Fear Of Missing Out’의 앞 글자를 딴 말이다. 놓치거나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뜻하는 경제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주변에서 주식을 사서 큰 수익을 얻었다거나 코인으로 대박을 터뜨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름의 원칙없이 주식과 코인 투자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다 보니 주식과 코인 투자에 실패한 이들과 좀비의 공통점이 “자신이 물려도 물린 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로 회자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다음 달부터 금리 인상을 시사한 후 미국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우리 주식시장은 새해 들어 폭락장이 이어지면서 개미투자자들이 속을 태우고 있다. 우량기업으로 생각한 오스템임플란트에서 역대급 횡령 사건이 발생했고 신라젠의 상장 폐지가 잠정 결정되는 등 불확실의 연속이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세는 이런 불확실성을 더욱 부채질한다. 질병관리청은 이달 말쯤에는 국내 하루 신규 확진자가 13만 명에서 17만 명 수준까지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곧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던 코로나19는 델타에서 오미크론으로 계속 변화하면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백신을 맞으면 일상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믿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아 암울하다. 코로나19 유행의 장기화로 국민 5명 중 1명은 우울감을 느낀다고 한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2021년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울 위험군의 비율은 지난해 1분기에 22.8%로 가장 높았으며 지난해 3분기 18.5%, 4분기 18.9%로 조사됐다.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감소하고 있으나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를 걷고 단체로 회식을 하던 평범한 일상이 사라진 데 대한 분노와 우울감은 커지고 있다.
경제도 사회도 시계제로인 상태인데 정치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대통령선거가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으나 대혼전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등 거대 양당 후보의 지지도가 초접전으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두 후보 모두 가족 리스크를 안고 있고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 인물인지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덜 나쁜 후보를 뽑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을 비롯한 대선 후보들은 세원 확보 방안 없이 선심성 퍼주기 공약을 쏟아 붓고 있다. 이번 대선의 캐스팅보트가 될 2030 청년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 현금 지원 공약을 남발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은 ‘부동산’과 ‘일자리’ 문제 해결을 바라고 있다. 다른 연령층도 마찬가지다. 시민은 현금 지원에 열광하며 몰려다니는 좀비가 아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데 혼돈의 시대를 헤쳐나갈 리더가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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