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개봉된 영화 ‘맨 오브 더 이어’는 할리우드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을 맡은 정치풍자 코미디영화로 얼떨결에 미국 대통령이 된 코미디언의 이야기다. 정치 풍자를 하던 주인공이 민주당과 공화당의 선거 행태를 비꼬며 “차라리 내가 대통령을 하겠다”고 선언한 후 지지율이 오른다. 이후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이는 선거 시스템의 오류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19년 당시 41세의 나이로 당선됐을 때 전 세계 언론은 영화가 현실이 됐다고 보도했다. 그는 2015년 방영된 TV시트콤 ‘인민의 종’에서 대통령 역할을 맡은 전직 코미디언이다. 우크라이나는 자원부국이지만 소수 신흥재벌과 권력층의 부정부패가 심했다. 이런 현실에 신물이 난 국민이 국정 경험이 없더라도 깨끗한 이미지의 젤렌스키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전쟁이 이어지면서 그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은 커졌다. 특히 정치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마추어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여부를 두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는 등 위기관리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러시아의 침공이 현실화하자 어김없이 ‘코미디언 출신 아마추어’라는 국제사회의 조롱이 이어졌다. 하지만 미국의 대피 지원을 거절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정부를 전복하고 괴뢰정권을 수립할 것으로 판단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의 최우선 제거 대상이라며 대피를 권유했다. 그는 이런 미국의 제안을 거절하고 “대피할 수단이 아닌 탄약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개전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면도도 하지 못한 초췌한 얼굴에 평상복 차림으로 SNS 연설을 하며 국민에게 항전을 호소했다. 이런 모습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애국심을 북돋게 했다. 해당 영상은 텔레그램에서 230만 번, 페이스북에서 35만 번 이상 재생되면서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를 이끌어 냈다. 국제정치 경험이 없어 위기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킨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용기있는 행동으로 우크라이나의 전쟁 극복을 바라는 시선이 늘고 있다. 우리에게는 위기상황에서 국민과 함께 국가를 지키기 위해 살신성인할 정치인이 과연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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