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남부에 있는 알프스산맥과 하이엔드 시계산업으로 대표되는 스위스는 세계 경제대국에 속한다. 국토 면적은 대한민국의 41%에 불과하지만 1인당 명목 GDP는 세계 2, 3위를 다툰다. 유럽 경제를 주도하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잘 살린 덕분에 관광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의 거점기지 역할을 담당한다. 부산에서도 첨단 제조업과 관광산업이 발달한 스위스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부가가치가 높은 제조업을 더욱더 키우고 가덕신공항에 맞춰 관광서비스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부산경제가 나아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다그마 슈미트 타르타글리 주한 스위스 대사가 신임장 제정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지난달 25일 부산을 방문해 박형준 부산시장을 예방하고,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와 부산·스위스 간 기술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스위스 명예영사관인 아트부산 사옥 방문, 드론쇼 코리아 행사가 열린 벡스코를 찾아 스위스 국가관과 참여 업체를 격려했다. 또 강서구 미음산단에 위치한 스위스 기업까지 방문했다.

내년이면 한국과 스위스가 국교를 수립한 지 60주년을 맞는다. 스위스 명예영사를 맡고 있는 필자는 부산을 찾은 스위스 대사와 동행하며 수교 60주년을 의미 있게 준비하고 부산도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다. 먼저 양국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세대에 와인과 치즈를 비롯한 스위스 특산품을 소개하고 음악축제를 개최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다음으로 각국 명예영사단 초청행사를 오는 5월 ‘아트부산’ 개최 시기에 맞춰 부산에서 열도록 추진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타르타글리 대사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아트부산 등 문화행사에 깊은 관심과 이해를 지녔으며, 박형준 시장이 제안한 디지털 기술 분야의 협력증진에 대한 필요성과 방향에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타르타글리 대사는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산업벨트의 주력산업인 조선업이 향후 최소 10년 동안 활황을 누릴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한국형 방위산업과 항공우주산업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최근 개발 중인 한국의 첨단 레이더 시스템 기술의 세계 시장 점유율도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반도체 및 IT기술 발달이 수도권 중심의 경제집중 현상을 유발했다면, 조선업과 방위산업, 항공우주산업의 도약을 통해 동남권의 산업경제가 균형적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동남권의 중심이자 환태평양 물류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부산이 관련 사업에 필요한 인재를 선제적으로 육성하고 스위스 기업의 부산 유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양국 대학 간 교류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타르타글리 대사가 부산 일정 중 방문한 미음산단의 부르크하르트컴프레이션은 스위스에 본사를 둔 업체로 석유화학과 LNG선에 들어가는 압축기에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무려 175년 동안 지속된 기업 역사에서 산업체 대학 연구기관을 이어주는 클러스터 기관과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기술력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부산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기계공업협동조합을 비롯해 조선기자재협동조합, 자동차부품조합 등이 있다. 이러한 기관을 활용해 동남권 기업들의 클러스터 역할을 할 수 있다.

주한 스위스대사관은 정무, 투자무역청 분야 외 별도의 연구개발 조직이 있어 한국과 스위스 간 산·학·연 연구지원 기능을 전담하고 있다. 서울대 등 수도권 중심으로 협력을 했고 최근 포항공대 UNIST 등 비수도권 대학과도 협력하고 있다. 이에 부산권의 대학과도 긴밀한 연구협약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필자는 적극 권유했다. 아울러, 전임 스위스 대사가 추진했던 부산-스위스 직항 항공편 개설 또한 가덕신공항 건설에 맞춰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 드렸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한 공약이 없거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무엇보다 근로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발전을 위한 공약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이런 식으로 대체 어떻게 양질의 일자리를 유지하고 늘린다는 건지 예측하기 어렵다. 중소 제조기업은 구인난에 허덕인 지 오래이며, 각종 규제와 신규 법으로 경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연구개발(R&D) 예산의 과감한 배정으로 중소기업의 기술혁신을 유도해 중소제조업으로 인재가 몰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소 제조업 종사자들에게 다양한 장려정책이 제공된다면 장기 근속자와 숙련공 양성을 통해 우리나라의 중소기업도 스위스, 독일의 뿌리 중소기업처럼 초격차 기술제품을 생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OECD 국가 중 상위 수준의 R&D 예산을 쓰면서도 대기업에 편중돼 중소기업의 발전이 더딘 것을 시정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