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인이 중학생 아들과 함께 수도권행을 결정했다. 앞으로 대학 및 직장을 수도권에서 다닐 것을 생각해 1년이라도 빨리 적응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아들 친구도 6학년이던 지난해 서울로 전학을 갔다. 주중 밤 11시가 돼야 모든 학원이 끝난다며 그 시간에 종종 전화를 걸어오던 친구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했더니 “여기(서울)는 다 이렇게 하니까 잘 모르겠어”라고 답했다고 한다. 대학갈 즈음 ‘인서울’을 위해 수도권으로 가던 연령대가 점점 내려오고 있는 느낌이다.
시간이 갈수록 대한민국이 아닌, ‘서울민국’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보통명사처럼 다가온다. 2019년 말 수도권 인구(2596만 명)가 처음으로 비수도권 인구(2582만 명)를 역전한 데다, 전국 20대 인구의 수도권 유입 비중은 2019년 기준 95%로 압도적이다. 이 중 73% 이상이 1인 전입자였으며, 전입 이유는 직업과 교육이 85%였다.
그도 그럴 것이 2020년 기준 국내 1000대 기업(매출액 기준) 본사의 74.3%가 수도권에 있다. 2010년 71%에서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니 앞으로도 수도권으로 순유입 되는 기업은 더 늘 것이다. 기준을 100대 기업으로 좁혀보면 본사의 수도권 비중이 91%나 된다. 좀 더 나은 환경의 근무 조건을 원하는 젊은층의 발길이 향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세계대학 평가기관 QS가 지난해 발표한 아시아대학랭킹 기준 국내 대학순위를 보면 카이스트 포스텍을 제외한 상위 12개 대학 모두 서울에 소재하고 있다.
기업의 투자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것은 ‘비수도권보다 인력 수급이 용이’하기 때문이라는 분석 결과도 있다. 최근 산업연구원이 발간한 ‘산업인력 정책 과제’ 보고서는 기업이 수도권 투자를 선호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방보다 원활한 인력 수급’을 꼽았다. 지방투자 과정에서 기업들이 호소하는 가장 큰 어려움이 ‘근로자 이탈 및 대체인력 확보(32.7%)’ ‘기업에 적합한 지역 내 고급인력 부족(17.8%)’ 등이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기업의 탈지역행을 막을 길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영국 셰필드대학 월드매퍼(Worldmapper)팀의 인구 밀도를 기준으로 수도권 집중도를 나타낸 지도는 충격적이다. 서울·수도권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복어의 배처럼 빵빵하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과밀도가 심하다고 알려진 도쿄(일본) 베이징·상하이(중국) 베를린(독일) 파리(프랑스) 등 전세계 어떤 지도도 감히 우리를 따라오지 못한다. 국토의 11.8%인 좁은 땅에 과반의 인구와 자본이 집중돼 있어 듣도 보도 못한 왜곡된 지도가 나오는 것이다. 혹자는 지금 대한민국의 분단선이 2개라고 말한다. 휴전선이 하나, 서울(수도권)과 그외 지역이 또 하나. 지방에 사는 청년들은 하루라도 빨리 두 번째 분단선을 넘어가지 못하면 2등 국민이 되는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얼마 전 한 인기 유튜버는 대한민국을 도시 국가라고 지칭했다. 홍콩 싱가포르처럼 한 도시가 한 나라를 대표하는 도시국가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다. 압도적인 밀집률에 따른 높은 사회 경쟁률, 끝없이 치솟는 집값, 치열한 취업난 등으로 인한 초저출산율 등.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수세기 안에 지구상 200여개 국 중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전락했다.
인구 전문가들은 한국이 지금 인구혁신을 위한 마지막 타이밍에 접어들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2022년 이후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에게 주어진 5년이 지방소멸을 막을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한다. 새 대통령 당선을 맞아 10일 자 본지에 소개된 부산지역 경제계 인사들의 한결같은 바람도 ‘지역간 불균형 해소, 지역균형발전’일 정도로 절박하다.
다행히 선거운동 기간 유력 후보 모두 주요 국정과제로 국가균형발전을 강조해 왔기에 다시 한 번 기대를 걸어 본다. 새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실현하지 못한 강력한 지방분권과 제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을 통한 국가균형발전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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