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전쟁의 시작과 함께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은 곧바로 경제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친푸틴 러시아 재벌(올리가르히)들의 해외자산을 동결하고, 러시아 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경제적 활동을 통제했다. 더불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무역 거래에 필요한 전산망 접근을 막았다.

그러자 주요 선진국 언론을 비롯하여 한국 언론들은, 경제 제재로 인해 러시아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며, 러시아의 침공은 목적 달성은 고사하고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 예상은 섣부른 판단이다. 경제 제재는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도덕적 분노와 응징일 수 있지만 이로 인해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후퇴시킬 수는 없다는 의미다.

러시아 민간은행들의 SWIFT 접근이 차단당했지만 석유와 천연가스를 결제하는 러시아의 두 은행에 대해서는 이 차단이 면제되었다. 이는 러시아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럽 국가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유럽에서 수입하는 석유의 26.7%,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서 들여온다. 러시아의 침공 후 석유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고, 유럽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두 배로 상승했다. 이로 인해 유럽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는 원유 및 천연가스 가격 폭등으로 비용인상형 인플레이션 압력을 받고 있다. 서유럽 주요국들은 자국 내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한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로부터 1차 에너지원의 수입이 전면 중단되면 유럽 경제는 치명타를 입는다.

루블화의 폭락은 러시아 석유 재벌들에게 치명타를 주는가? 유럽으로 수출되는 1차 에너지는 대부분 달러나 유로로 결제되므로 루블화가 폭락해도 러시아의 에너지 재벌들이 수출로 인해 손해 볼 일은 없다. 러시아 재벌들의 해외자산은 동결되었지만, 이들 자산은 달러나 유로 표시 자산이기 때문에 루블화 표시 가치는 오히려 폭등한다.

친푸틴 재벌들의 소득 원천은 러시아 정부 소유 자산에서 비롯되는 까닭에 비록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아도 그들이 반푸틴 전선에 앞장설 수도 없다. 자신들의 주된 수입원인 천연가스와 오일 달러는 여전히 러시아로 유입되고 있고, 해외자산은 향후 동결이 해제되면 사용할 수 있으며 친정부 입장을 유지해야 부의 원천도 소멸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 제재가 러시아 재벌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고, 러시아 경제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판단은 경제적으로도, 정치현실적으로도 전혀 그럴듯하지 않은 전망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곧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 이후 미군은 오히려 우크라이나에서 군사훈련 지원 목적으로 파견돼 있던 인원마저 철수시켰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는 나토가 ‘비행금지구역’을 지정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나토는 러시아군과 직접 대결할 생각이 없다는 의미다. 상호확증파괴력을 지닌 핵을 보유한 두 진영이 군사적으로 직접 마주친다는 것의 의미를 서로가 잘 알기 때문이다.

2007년 영국 상원의 한 보고서는 “경제제재가 다른 정책 수단과 별도로 활용될 경우 그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결론 지었다. 군사적인 수단 등을 동반할 때에만 정책 목적이 실현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저명한 케인즈주의 경제사학자인 스키델스키 교수는 “경제 제재의 남용은, 적대 진영 간의 갈등을 고조시키고 글로벌화된 세계가 지향하는 질서는 파괴하지만 그 정치적 목적 달성에는 거의 무용하다”고 프로젝트-신디케이트의 칼럼에서 썼다.

경제 제재 효과는 불투명하고, 나토는 군사적으로 개입할 의사가 없기 때문에 휴전 협상이 아니라면 침공은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다. 전쟁의 지속은 우크라이나 민중에게 가장 큰 비극을 초래한다. 경제 제재는 효과가 없고 상호 고통만 강화한다. 정의의 관점에서 악을 ‘응징’하겠다는 의지가 좋은 결과를 낳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침공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지만 설사 침공이 일어난 후에라도 외교적 노력과 협상이 상호이익을 증진시키고 가장 취약한 시민을 보호한다는 점을 상기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