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신세가 뒤바뀌어 내 보호자가 된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서 끝없이 나오던 노래다. “너하고 나는 친구 되어서 사이좋게 지내자. 새끼손가락 고리 걸고 꼭꼭 약속해.”

사이좋게 놀자는 뜻 좋은 노랫말이지만 마치 보리타작 뒤 속옷 등짝 어딘가에 까끄라기가 박인 느낌 마냥, 얄궂게 불편하다. 우리는 왜 친구 아니면 까칠하게 굴지? 그게 당연한가?

오늘 처음 만난 자리인데 어쩌다 학교 이야기가 나와 선후배 인연이라도 걸쳐지면 그 순간 더없이 친한 사이로 돌변한다. 한 사람은 바로 ‘에헴’ 자세를 잡고 상대방은 지극히 공손해진다. 같은 학교 다니면서 특별한 우정을 쌓았다거나 앙망불급 하다 만난 것도 아닌데, 뜬금없지 않은가? 무슨 사조나 학파를 고수하는 특별한 학연도 아니고 하다못해 지원으로 엮인 것도 아닌데 이상하지 않나? 뜬금없다는 생각이다. 아는 사람이 낯선 지방에서 사업을 벌이게 되었는데 연고가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다. 할 수 없어 결국에는 그 지역 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을 고용해 영업해야만 했다 한다. 그 고장에서는 그 학교 출신 아니면 쳐주지 않아서 아무 일도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특별히 인맥이 넓거나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데리고 가서 말 붙이는 용도로 썼다는 말이다. 이건 또 무슨 지랄 같은 텃세인가.

우리가 혈연 학연 지연 등 갖은 핑계와 이유를 들이대면서까지 서로 고리를 걸려고 애쓰는 까닭이 무엇일까? 하다못해 누구누구 아느냐? 그래? 그럼 이 사람은? 그러다 억지로라도 엮이는 낌새가 있으면 자신이랑 아주 잘 아는 사이임을 강조하며 끌어다 붙인다. 나라는 인물 그 자체로 들이대는 게 아니라 누구와의 관계 속 나로 쉬 먹자는 심보다. 이제는 버려야 할 구시대의 습속 아닌가?

몇십 년 만의 초등학교 동창회에서의 일이다. 한자리에 앉아서도 서로를 기억해내지 못했으니까 밖에서 마주쳤을 땐 전혀 모르는 사람일 수밖에. 그러나 동기라는 관계를 인정하는 작업 하나로 순간 더없이 친한 사이로 돌변해 서로 말을 트고 수십 년 된 친구처럼 여기는 건 뭔가 말이다. “야, 누구야 술 좀 따라봐라.” 이렇게 막 대해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뒤탈도 없다. 알게 된 지 불과 한 시간도 안 됐는데? 이제 우린 친구인 거야? 그렇지만 이걸 우정이라고 칠 수 있나.

친구의 사전적 의미는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이다. 오래 묵은 관계는 어지간한 잘못을 저질러도 너그럽게 마음이 작동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만만해서 좋은가? 서로 접어줘서 그런가? 반면 처음 보는 사람이 그렇게 못마땅한 까닭은 또 무엇인가?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이 작동해서?

통상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이 나중에 온 사람에게 부리는 행사나 괴롭히는 행동을 두고 텃세를 부린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동물들의 짓거리다. ‘닭쌈에도 텃세한다’든지 ‘똥개도 자기 집 앞 싸움에는 50점 접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지만, 이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지 않은가.

유독 낯선 사람에 대해 경계하는 건 서부영화에서나 나오는 장면이다. 낯선 사람이 나에게 어떤 해코지를 할까 노심초사 경계하는 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는 원시사회의 유물이지 지금과 같은 대명천지에 지녀야 할 장도가 아니다. 낯선 곳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누군가 친절하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면 우리는 그걸 품위 있고 격조 높은 문화라 인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단지 두 부류로만 나누어 낯선 이에게 악의를 보이고 달려들어 물어뜯는 건 개나 하는 짓이다. 공존하는 모든 존재를 존중하고 낯선 사람이나 힘겨운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건 사람이기에 지켜야 하는 마땅한 도리다.

어느 날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리듯 주워들었다. “낯선 이에게 친절하라. 변장한 천사일지 모르니까.” 요즘 세상에 설마 천사가 변장까지 하고 날 떠보려 찾아올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푼다는 건 소중하고 또 멋진 일이지 않은가. 찰스 디킨스가 한 말이라 한다. “인내를 배운 사람은 온 세상을 친구라 부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