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삼성중공업이 경기도 판교로 R&D 센터를 이전하고 2018년 대우조선해양이 경기도 시흥에 R&D 센터를 개소한 데 이어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글로벌 서비스마저 부산의 연구개발 인력을 수도권으로 옮길 조짐이 있어 지역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동남권은 조선 산업 생산총액 84.6%를 담당하는 이른바 조선 산업의 메카이다. 지역대학의 조선 관련학과 또한 국내 정상급이다. 젊고 유능한 인력이 수도권에 많기 때문이라는 수도권 이전 기업의 변명이 조선 3사 만큼은 옹색해 보인다. 동남권이 압도적 비중을 자랑하는 조선 산업조차 이런데 다른 분야는 일러 무엇 하리오. 지역기업들은 유능한 인재를 못 구해 수도권으로 떠나고 지역 인재들은 좋은 일자리가 없어서 수도권으로 떠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언제부터인가 동남권은 감소와 떠남과 소멸이 익숙한 지역이 되었다. 1000대 기업 중 동남권 입지 기업은 2008년 134개에서 2020년 89개로 크게 감소했다. 작년 부산과 경남은 전국 17개 시도 중 수도권으로의 인구 순유출 1, 2위를 기록했다. 특히 청년층의 동남권 이탈은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 2월 기준으로 동남권 566개 읍면동 중 60.6%인 343개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부산은 전국 8대 광역·특별시 중 가장 높은 소멸위험 비율을 보이고 있다.

2010년 전국 6대 경제권역 중 4위에 머물렀던 동남권의 성장잠재력 지수는 2020년에는 최하위인 6위로 떨어졌다. 성장잠재력이 낮다는 것은 앞으로도 경제 재도약의 모멘텀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인력·교육 R&D 창업 신산업 등을 중심으로 도출한 지역혁신성장 역량평가 종합순위에서도 동남권은 하위권을 기록했다. 경남과 부산은 17개 시도 중 각각 13위와 12위, 울산은 7위로 나타났다.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역균형발전특위를 만들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부산 이전에 더해 절반 미만인 비수도권 인구 비중을 55%, GDP 비중을 60%로 끌어 올리겠다는 구체적인 목표 수치까지 거론하여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강력한 의지 표명이 반갑기는 하지만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역대 정부 모두 지역균형발전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했지만 오히려 수도권 집중은 가속화되고 지역은 소멸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했다면 앞으로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간의 실패와 한계를 되짚어 보며 몇 가지 시사점을 찾아볼까 한다.

첫째, 집권 초기부터 과감하고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조기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강력한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수도권 중심의 기득권 카르텔이 균형발전 동력을 순식간에 무력화 시킬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공기업 이전 계획이 집권 후반기 들어 급격하게 추진력을 상실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둘째, 미래 성장동력의 지역배치 없이는 지속 가능한 균형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디지털 전환과 혁신성장이 이끄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미래 먹거리 K-반도체 K-배터리 K-바이오를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수도권과 충청권에만 배치하는 한 동남권을 비롯하여 수도권과 떨어진 지역은 미래 성장을 기약할 수 없다.

셋째, 고용없는 성장에 대응할 수 있는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필요하다. 대통령 당선인이 표방하는 민간주도성장과 민간주도 일자리창출 정책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민간 대기업을 지역으로 이전하는 수준의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수도권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민간에만 맡겨두면 수도권 집중과 지역 소멸은 더 가속화될 수 있다. 계열사 본사를 지역으로 이전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에 특별한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강력한 유인책이 요구된다.

당선인은 물론 유력 주자들이 앞 다퉈 지역균형발전 공약을 내걸었다. 치열하게 공약 경쟁을 하다 보니 어느덧 각 정당의 지역공약도 닮아있다. 지금이 호기이다. 지역 정치권과 경제계, 시민사회가 함께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강력한 추진을 독려하고 감시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