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소크라테스를 제대로 처음 만난 때는 대학 입학 후였다. 그전에는 그저 ‘너 자신을 알라’ ‘악법도 법이다’ ‘악처’ 정도의 표현과 연결지어지는 피상적 이미지였다. 수업 교재였던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으며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아테네 시민을 화려한 언변으로 현혹시키는 소피스트들에게 곤란한 질문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계속 던져 대서 소피스트를 자기모순에 빠트리는, 소피스트들에게는 밉살스러운 존재였다. 소크라테스는 철학계의 이소룡이었다. 거의 도장 깨기 수준이었다. 20세의 열혈 청년에게는 소크라테스는 말로 싸우는 파이터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국가론을 다시 읽어보며 소크라테스에 대한 첫 인상이 그야말로 내 멋대로의, 거친 해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소피스트에 대한 이해도 너무 일면적이었다. 플라톤이 소피스트의 언변술을 ‘가짜로 교육하여 현금을 버는 기술’ ‘유명하고 부유한 젊은이들을 사냥하는 기술’로 비유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소피스트를 ‘사이비 지혜의 장사꾼’으로 비난한 것만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소피스트들은 교육자였다. 기원전 5세기에 페르시아의 침략을 물리치고 델로스동맹을 결성해 그리스 지역의 강대국으로 지위를 굳혀가던, 선진 민주국가인 아테네로 고등교육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이 소피스트들이었다. 소피스트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와 비교해 볼 수 있다. 제자백가의 사상가들은 자신의 사상을 통치에 활용할 주군들을 찾아다녔다. 반면에 소피스트들은 아테네 광장의 대중 앞에 섰다. 이들이야말로 민주시민교육의 선구자였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한 것도 소피스트들을 대중 앞에서 망신주기 위해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를 존중했다. 소크라테스는 메시지를 공격하지 메신저를 공격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의 정치 상황처럼 메신저를 공격해 메시지의 의미도 폄훼해버리는 짓을 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메시지에 대해서도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소피스트의 화려한 웅변술에 숨은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려던 것이었다. 혼자만의 경험과 사색을 통해 만들어지는 메시지의 문제점을 대화의 방법을 통해서 찾아가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들의 대화는 소크라테스의 도장 깨기가 아니라 대화의 상대방을 존중하며 대화를 통해 진리에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소피스트들이 주도하던 민주시민교육의 허점을 찾아내어 고치는 작업이었다.
2500년 전에 돌아가신 테스형을 갑자기 소환하는 이유는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에는 대화와 설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공중파 방송에서 주 1, 2회 정도 볼 수 있던 토론방송이 이제는 종합편성채널의 시사 프로그램에 패널들이 참석해 거의 온종일 계속된다. 그런데 예전의 토론 과정에서 볼 수 있었던 풍자와 해학이 사라졌다. 비아냥거림만이 난무할 뿐이다. 상대방의 팩트는 나에게는 가짜 뉴스다. 설득은 바라지도 않는다. 대화 같은 대화를 기대하는 것도 이미 늦어버린 것일까?
테스형. 폴레마르코스가 정의를 ‘각자에게 갚을 것을 갚는 것’이라며, 친구에 대한 정의와 적에 대한 정의를 갈라치기 할 때, 테스형이 상대가 친구이든 또는 다른 누구이든 간에 해를 입히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라고 한 수 가르침을 주셨잖아요, 멋졌어요.
그리고 트라시마코스와 올바른 것에 관한 대화를 할 때, 테스형이 의술(醫術)에 대한 얘기를 했던 것 기억하세요? 트라시마코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법률이 강한 자의 편익을 위한 것이라면 의술도 의사들의 편익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데, 테스형은 그렇지 않다고 했잖아요, 의술 자체가 환자를 위한 기술이기 때문에 의사들도 환자들의 편익을 위해서 그 기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건 좀 그래요. 세상이 변한 건지. 대학병원장이 의사 직업을 세습시키려고 뭔가 수상하게 자식들을 의대에 편입시켜 놓고는 뭐가 문제냐고 우겨대요. 대학교수 부부가 자식을 의사 시키려고 표창장을 위조해서 의대 진학을 시켰는데, 그게 뭐가 잘못이냐는 교수가 꽤 많아요. 이게 환자의 편익을 위한 건 아니지 않을까요?
이런 사람들과는 대화를 어떻게 하죠? 대화가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대화를 하기도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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