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은 이순신이 태어난 지 477주년이 되는 날이다. 나라가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마다 이순신은 시대의 격전지로 불려 나오길 거듭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보여준 리더십과 백성을 보살피는 애민정신, 나아가 전장 장수로서의 탁월한 전략 등은 그를 성웅 이순신으로 깊이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순신 사후 400여 년이 지난 지금껏 국가권력은 이순신의 영웅적 면모를 정치적으로 이용만 했을 뿐 여전히 그를 ‘역사 속의 위인’으로만 남겨놓았다. 애국계몽기의 신채호가 쓴 ‘이순신전’, 일제강점기 이광수의 ‘이순신’, 한국전쟁기 박태원의 ‘리순신 장군’, 한국전쟁 종식 후 박종화의 ‘임진왜란’, 2000년대 이후 김훈의 ‘칼의 노래’, 김탁환의 ‘불멸의 이순신’ 등도 대중의 문학적 상상력은 고무시켰을지 모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격동의 시기마다 이순신을 소환해내는 방식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나 지향점에 준거한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이순신을 소환했던 매 시기가 그러했겠지만 지금은 지난 시기 어느 때보다 엄중한 상황에 직면해있다. 지표상으로는 세계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있고, 군사적으로도 이미 열세를 면한지 오래됐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러한 화려한 수치 뒤에 가려진 삶의 지표는 어떠한가. 여전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며, 국민의 절대다수를 분열시키는 불평등지수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 과반수가 수도권에 집중된 기형적인 국가, 서울공화국이라는 오명도 이제 낯설지 않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금, 국가의 수장은 바뀌었으나 아직은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팬데믹으로 인한 국민의 피로감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정치인들은 또다시 희망의 메시지만을 쏟아낸다. 그것이 어떤 시대가치와 정신에 근거해야 하는지, 지금 한국사회에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일말의 성찰도 없다.

400년 전 이순신은 어떤 지도자였을까? 사료에 의하면 공인으로서 그는 어느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사분오열된 상황에서 위정자들은 앞다투어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백성을 나몰라라 했다. 전쟁이 발발한 급박한 상황에서도 어느 것 하나 달라지지 않았고, 급기야 국왕이 백성과 궁을 버리고 도망가기에 이른다. 이순신은 이 모든 악조건을 딛고 일어선다. 국왕과 사대부 위정자에 대한 원망도 없었으며, 자신의 암담한 처지를 한탄하지도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신념대로 선공후사의 자세로 나라와 백성을 지켜낸다. 그가 명량해전에 앞서 올린 장계에 나오는 말,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畢生卽死)는 이제 한국인의 가슴에 새겨진 금언이 됐다.

최근 평생을 이순신 연구에 바치며 그의 삶을 따르고자 했던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5번의 개정을 통해 새로이 이순신평전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저서 ‘이순신, 하나가 돼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에서 재판관 김종대는 이순신 정신의 4대 가치를 사랑 자립 정성 정의로 규정한다. 무엇보다 사랑을 가장 앞세워 강조한 것은 이순신의 삶이 근본적으로는 사랑에 토대를 두고 있었음을 알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혈연에 기반을 둔 사랑이, 자신이 휘하에 둔 병졸과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가 나라와 국토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확장돼 나가는 과정은 이순신이 어떤 지도자였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사랑은 정성스러운 삶의 자세로, 스스로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로움으로 변주돼 그의 전 생애에 스며든다.

인간으로서나 지도자로서나 최고의 삶을 살다 간 이순신을 떠올리면서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 한 가지, 우리는 과연 삶의 순간순간을 이순신처럼 살 수 있을까? 이순신이란 거울 앞에 선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아마도 이순신을 ‘지금-여기’로 소환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의 태어난 날을 기념하고, 그의 승전을 축하하는 일로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름 없는 민초와 함께 지켜내고자 했던 그의 정신적 가치를 통해 우리는 뼈아프게 부끄러운 자화상을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