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보디빌더 챔피언 선수로부터 프로야구 투수가 할 수 없이 은퇴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 들었다. 프로야구 시합에서 투수가 시속 150㎞ 넘는 강속구를 던지려면 어깨 힘이 아니고 손가락 끝에서부터 팔 어깨 등 근육을 지나 골반 뒤까지 연결되는 근육을 모두 사용해야 한다. 여기에 손가락 끝으로 공을 떨어뜨리고 돌리는 힘이 있어야 변화구를 던질 수 있다. 일반 사람은 프로선수의 몸이 매우 건강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걸어 다니는 부상병동 상태다. 팔이나 어깨 근육 부상을 당하면 투수는 부상당한 곳 대신 다른 근육을 사용하게 돼 강속구나 변화구 조절이 안된다. 그 결과 홈런과 안타를 얻어맞게 된다. 프로야구 시합을 중개하는 해설가는 공 던지는 투수의 폼이 평소와 다르다고 해설한다.

그림= 서상균 기자

영점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총을 쏘면 과녁을 빗나가게 된다. 대부분의 프로 선수는 부상으로 영점이 잡히지 않는 슬럼프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겪게 된다. 항상 옆에서 자신을 관찰한 코치의 조언을 듣고 외롭고 힘든 재활운동을 통해 부상당한 근육을 회복한 선수는 슬럼프를 탈출, 좋은 성적으로 복귀할 수 있다. 그러나 코치의 조언을 안 듣고 힘든 재활운동을 극복하지 못해 영점을 못 잡은 선수는 홈런과 안타를 계속 얻어맞게 된다. 이로 인한 정신적인 슬럼프를 극복 못한 투수는 부진한 성적으로 할 수 없이 은퇴한다. 슬럼프를 탈출한 프로 선수를 높이 평가해야 하는 이유는 코치의 쓴소리를 귀담아듣고 외롭고 힘든 재활운동을 극복하면서 자신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과 상대적으로 경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옆길로 나갈 수도 있고 실패와 좌절을 겪을 수도 있다. 우리의 어렸을 때 아버지는 가정의 중심이었으며 부모의 엄한 잔소리와 함께 필요시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고 자랐다. 1960년도 중·고등학교는 물론이고 초등학교 담임선생님도 스승님이었다. 선생님은 학생의 잘못을 꾸짖었고 필요하면 엄한 벌을 주기도 했다. 학교 간의 명예가 달린 전국 수학경시대회에서 수상을 못하면 수업을 마친 후 학교 뒷산에서 학교 선배로부터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맞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과외공부 시간에 지각해서 과외선생님으로부터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맞은 기억이 생생하다.

병원 레지던트 교육은 사제 교육으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으며 교수님의 조언과 질책을 당연히 받아들였다. 법조계나 기업의 사회 조직도 선후배 관계로 끈끈하게 연결돼서 엄한 가르침을 주었다. 국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대통령도 있었다. 이같이 올바른 영점을 잡아주기 위해 집안과 학교에는 엄한 부모와 스승이 계셨고, 사회에는 선배와 원로가 있었으며, 국가에는 국익을 위한 정치지도자가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는 집에서 저녁 얻어먹기도 어렵게 위축됐고, 부모는 자식의 잘못을 꾸짖지 못하고 눈치 본다. 학생과 선생님과의 스승·제자 관계는 퇴화했고 선생님은 불이익을 걱정하며 학생을 위해 해야 할 말을 못 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도 교수나 선배 레지던트는 후배에게 가르치려면 쓴소리도 해야 하는데 현실은 어렵다. 의료인이나 법조인은 사명감을 갖고 의술과 법률을 배우지만 그냥 직장인으로서 출퇴근하기도 한다. 회사나 조직 사회도 선후배 관계가 무너진 지 오래됐다. 국익을 위해 바른말하는 정치가는 오히려 선거에서 낙마하기도 한다.

단군 이래 한반도에서 살았던 한민족이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로 위기에 빠지지 않을지 걱정된다. 배 엔진이 꺼진 상태에서 뚜렷한 목적도 방향도 없이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표류하는 배의 종착역이 어디가 될지 두렵기만 하다. 아무리 지식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더라도 쓴소리와 함께 지혜로운 판단으로 조언해줄 꼰대는 이제 나오기 어려운 시대인가. 이제 꼰대가 필요 없는 시대인가.

이상찬 세화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