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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흉기가 되는 말, 힘이 되는 말

  • 국제신문
  •  |   입력 : 2022-09-12 19:22:55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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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내 삶에서 결코 잊지 못할 큰 사건을 세 가지 겪는다.

첫 번째는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누나와 함께 자취방에서 도시의 아이들 속에 섞여 공부했다. 낯선 도시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지 못하는 심리적 위축감이 컸다.

두 번째는 동물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누나가 준 용돈으로 아이스크림 사러 매점에 갔다. 사람들 틈에 끼어 머뭇거리는 내게 매점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뭐 먹을래? 못생긴 애야…”. 순간 나는 멍했다. 얼마나 못생겼으면 처음 보는 아저씨가 그렇게 말할까. 조롱이고 놀림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받은 외모에 대한 평가로 더욱 위축된 채 사춘기를 보냈다.

세 번째는 과학실에서 일어났다. 과학 수업 시간에 옆 친구가 장난을 걸어서 하지 말라고 했는데, 선생님에게 불려 나가 꾸지람을 들었다. 과학 선생님은 “너는 처음 보는 아이인데,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 이름을 이야기했다. 처음 듣는 곳인데 어디냐고 해서 지역을 이야기했더니 “시골이네. 촌놈 주제에 수업 시간에 떠드느냐”면서 나만 별도로 뺨을 몇 대 때렸다.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공부 잘한다는 소리 들으면서 학교 다녔는데, 뺨을 맞는 그 순간 아픔보다는 충격이 더 컸다. 시골 출신이라는 이유로 무시 받고 차별받을 수 있구나. 그 이후로 나는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강박을 갖고 살았던 것 같다.

13살밖에 되지 않았던 나에게 일어난 그 일들은 나의 삶에 크고 작은 일들 가운데 영향을 미쳐 왔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 때로는 못생겼다고 놀리거나 촌놈이라고 무시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나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공부도 그런대로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으며, 좋은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지냈다는 것이다.

인권이 강조되는 사회이지만 우리는 더 나은 환경 속에 살고 있을까? 청소년들은 그렇게 살고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조롱과 무시, 학대와 차별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한 혐오와 배제를 경험하고 있다.

어쩌면 어릴 적 경험했던 그 일들과 오버랩 된다. 당시 부모님과 떨어져 공부해야 한다는 심리적 위축감이 사회적 안전망이 약하고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가진 요즘 세대의 위축감과 겹친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에게 모든 것을 줘도 된다는 능력주의가 사람의 심리를 위축시킨다. 못생겼다고 툭 뱉은 말은 무분별한 조롱과 냉소를 쏟아내는 사이버 폭력과도 겹친다. 매점 아저씨가 나에 대한 아무런 정보나 배려 없이 던진 평가는 내 삶에 있어서 상당한 심리적 상처로 남았다. 촌놈이라는 이유로 겪었던 사건은 우리 사회의 신분에 따른 차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제와도 겹친다.

9월 10일.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정한 자살예방의 날이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 30대 이상 자살률 1위, 특히 고령자에서 일어나는 높은 자살률과 청소년 자살률의 현격한 증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보고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말이 흉기가 되었지만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물리적 폭력에 대한 문제 인식은 넘어섰지만 여전히 정서적이고 언어적인 폭력이 난무한다. 때리지 않으면 폭력과 학대가 아니라는 인식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익명이라는 장막 뒤에서 무분별한 조롱과 냉소를 쏟아내는 댓글, 나와 다르면 구분 짓고, 내가 조금 불편한 대상이면 배제하는 행태, 상대방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배려 없이 쏟아내는 즉흥적인 평가…. 이런 것이 사람을 병들게 한다. 암울했고, 부끄러웠고, 나서면 안 될 것 같은 심리적 위축감이 컸던 청소년기를 잘 극복했던 것은 너는 귀한 사람이라고 일깨워준 가족의 말이었고, 같이 공부하고 놀자며 내밀어준 친구들의 손이었고, 열심히 하라고 다독거려준 어른들의 격려였다. 지금 내 가족에게, 내 자녀에게, 그리고 친구와 이웃들에게 흉기가 아닌 힘이 되는 말을 건네보자. 그러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달라지지 않을까.

홍재봉 부산생명의전화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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