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겨울이다. 그를 처음 만났다. 경남지사일 때다. 바지만 검은색, 모자 장갑 운동화 윗옷 재킷은 온통 빨간색. 모자는 앞을 약간 올려 썼다. 세련된 맛은 없었다. 걸음엔 여유가 넘쳤다. 뒷짐을 지고 오르막을 걸었다. 한 시간 반가량 부산 해운대구 장산을 함께 등반했다. 등 뒤에 바짝 붙어 한마디 한마디 받아 적었다. 그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직설이다. 설득이 통하지 않았다. 신념은 확고했다.

그를 등산에 초대한 건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이다. 신공항 광역상수도 등 부산 경남 간 민감한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서 전 시장은 ‘신공항 민자 건설’ 파격 카드를 내밀었다. 그는 “현실성 없다”며 제대로 대꾸하지도 않았다. 경남 남강댐 물을 부산에 식수로 공급하는 광역상수도 질문도 나왔다. 그는 특유의 화법 “됐습니다”를 꺼냈다. “지금 얘기할 단계가 아닙니다. 됐습니다.” 휙, 고개를 돌렸다. 더 말하지 말라는 의미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사 기자에겐 질문 안 받는다고 호통쳤다.

등반 중 사찰에 들러 주지 스님과 차담을 나누는 일정이 있었다. 서 전 시장이 앞장섰다. 그는 영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뒤에서 혼잣말했다. “아이고~ 지 옛날 지역구라고 되게 그래 쌌네.” 서 전 시장은 해운대 지역구 의원을 지냈다. 둘의 대화를 내내 집중해 듣자니, 그는 마치 서 전 시장을 동생처럼 여기는 듯했다. 서 전 시장이 두 살 형님이다.

그날 본 그의 태도는 이후로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는 상대를 공격할 때 독설과 함께 반말도 종종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칭할 때 “문재인이가” “문재인이는” 이런 말을 쓴다. 문 전 대통령이 한 살 형님이다.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문 전 대통령이 그에게 “이보세요”라고 하자, “버릇없다”고 응수했다가 나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는 “호적 등재가 그리됐을 뿐, 동갑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다. 국민의힘 제21대 대선 후보 경선에서 떨어진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를 추억한 건 ‘같은 편’이 아니라 그의 공격을 받아내던 ‘다른 편’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그를 “낭만의 정치인”이라고 했다. “상대 진영에 있지만 밉지 않은 분. 유머와 위트, 통합의 정신을 잊지 않는 진정한 정치가”라고 글을 썼다. “한국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보수 정당을 위해 평생 헌신하신 홍 선배님께서 정계 은퇴를 선언하셔서 참으로 안타깝다”고도 했다.

그는 30년 정치 인생 ‘변방의 풍운아’로 불렸다. 6공화국의 황태자와 검찰 간부를 줄줄이 구속한 ‘모래시계 검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국회에 입성했다. 5선 국회의원, 경남지사, 대구시장은 물론 두 번의 당 대표를 지내며 정치력을 떨쳤다.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꼿꼿했다. 뱉은 말에 핑계 대지 않았다. 항상 당당했다. 마지막 목표로 삼은 ‘국가 경영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근래 그만큼 영향력을 행사한 정치인도 없다.

그는 무엇보다 ‘잘 드는 칼’이었다. 거침없는 화법, 절대로 눈치 보지 않는 쾌도난마. 그는 스스로 회상했다. “이 당(국민의힘)에서 행복할 때가 DJ·노무현 정권 시절 저격수 노릇할 때였던 거로 기억한다. 자고 일어나면 오늘은 무엇으로 저들에게 타격을 줄까만 생각하면서 당의 전위대 노릇을 자처할 때, 나는 그게 내 역할인 양 착각하고….”

그렇게 ‘잘 드는 칼’이 30년 몸담았던 곳을 찌르니 국민의힘으로선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초유의 대선 후보 강제 교체 시도는 그가 칼끝을 내부로 돌리는 계기가 됐다. “일하는 놈 따로, 자리 챙기는 놈 따로인 국민의 짐”에 묵은 분노가 폭발했다. “한 X이 한밤중 계엄으로 자폭, 두 X이 한밤중 후보 약탈 교체로 파이널 자폭”한 당에서 그는 보수의 미래를 찾을 수 없다고 한탄한다. 누가 봐도 한 X은 윤석열 전 대통령, 두 X은 ‘쌍권’이다.

국민의힘은 그의 공격에 매우 아프다. 당을 가장 잘 아는 그가 가장 아픈 곳만 건드린다. 그의 지지 모임은 이미 국민의힘 지지를 거뒀다. 민주당 이 후보가 당선되면 그가 초대 국무총리로 기용될 것이란 설도 나온다. 국민의힘엔 발등의 불보다 더 위급하다. 김문수 대선 후보는 그의 측근들에게 직접 하와이로 가서 설득하라고 요청했다. 손 편지도 함께 보냈다. 하와이에 체류 중인 그는 “문수 형은 안타깝지만, 그 당은 이미 탈당했다”며 오지 말라고 했다.

진즉에 정신 차려야 했다. 쿠데타와 학살에 가담한 자를 캠프에 영입하려다 취소하고, 내란 세력을 단호히 끊어내지 못한 모습은 선거를 포기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국민의힘은 그를 얄밉다고 여길 이유 없다. 오지 말랬는데 굳이 하와이로 간대서 그를 달랠 명분도 없다. ‘30년 의리’에 호소해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겠지만, 늦었다. 이미 국민 눈 밖에 났다. 국민 마음마저 돌리지 못한다. 만시지탄이다.

권혁범 편집국 디지털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