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병사 순직 사건의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격노가 다시 이목을 끈다. ‘윤 전 대통령의 격노’가 수사 외압으로 작용했다는 의혹 규명이 수사 핵심이기 때문이다.

격노는 ‘몹시 분하고 노여운 감정이 북받쳐 오르거나 몹시 화를 내는 행위’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요소가 있다. 이는 ‘갑의 행위’이거나 ‘권력을 쥔 자’의 격한 감정 표현이라는 점이다.

윤 전 대통령의 격노를 처음 들은 것은 정권 출범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정권 초반 셀럽으로 주목받던 김건희 여사의 행보가 여러 이유로 입방아에 오르기 시작하던 즈음이다.

국민 여론을 파악하던 대통령실이 김 여사 항목을 넣으면서 사달이 났다고 한다. 대통령은 ‘제외하라’고 했지만, 비서진은 여론의 정확성을 위해 김 여사를 포함한 결과를 보고했다고 한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이 “불같이 화를 냈다”는 것이 당시 비서진의 전언이다. 이 인사는 짧은 대통령실 근무를 마치고 교체됐는데, 대통령의 격노와 관련됐는지는 알 수 없다.

이후 대통령의 격노는 공공연하게 정치권에서 회자됐다. 2024년 4월 총선 때 방송 출구 조사 결과를 몇 분 일찍 보고받고 “그럴 리가 없다. 당장 막아!”라고 격노했다는 얘기도 언론 보도로 나왔다. 2024년 12월 3일 계엄 직전 국무회의 때 일부 국무위원이 소극적 태도를 취하자 격노했다는 보도는 또다른 사례다.

돌이켜보면 정권 출범부터 막을 내릴 때까지 2년 6개월간 윤 전 대통령의 격노가 대통령실을 지배한 셈이다. 권력자의 격노는 개인 화풀이로 끝나지 않는다. 대통령의 격노가 일상화하면 비서진과 내각, 그리고 여당은 입을 닫는다. 권력의 작동 원리다. 주변에는 ‘예스맨’만 넘쳐날 수밖에 없다.

취임 초 윤석열 정권을 상징하던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 회견)’이 5개월 만에 중단됐고, 반대 의견을 피력하는 인사들에 대한 ‘입틀막’이 공개 행사에서 자행됐다. 대통령실 설치가 논의되던 레드팀(조직 내부에서 의도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역할)은 소리 소문 없이 흐지부지됐다. 여당이던 국민의힘에는 ‘윤핵관’ ‘찐윤’ ‘친윤’ ‘친윤 호소인’ 등 각종 ‘윤’들만 활개쳤다. 반대파는 제거하거나 왕따시켰다. 우연이 아니다. 지난 19일은 해병대 병사 순직 2주기였다. ‘대통령의 격노’가 결국 자신을 향하고, 정권의 몰락까지 가져온 것은 아닐까. 권력자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다.

박태우 서울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