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며 세계적인 항만도시이다. 북항 재개발, 가덕도신공항, 부산국제영화제, 국제크루즈, 해양산업 등 부산은 대한민국을 넘어 동북아 해양수도로 도약하겠다는 분명한 비전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부산오페라하우스 역시 이러한 도시의 미래 전략과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
해양수도는 단순히 물류가 오가는 도시가 아니다. 사람과 문화, 예술이 만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그것을 세계로 확산시키는 도시를 의미한다. 과거 베네치아와 제노바가 그러했고, 오늘날 함부르크와 시드니가 그러하다. 세계적인 항만도시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대표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고 이를 세계에 수출하는 문화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부산은 역사적으로도 대한민국의 운명을 지켜낸 도시이다.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영토 대부분이 전쟁의 참화에 휩싸였지만, 부산은 끝내 무너지지 않은 자유 대한민국의 마지막 보루였다. 전국에서 수백만 명의 피란민이 부산으로 몰려들었고, 대한민국 정부 역시 부산을 임시수도로 삼아 국가의 기능을 이어갔다. 부산은 단순한 피란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낸 희망의 도시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부산은 문화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피란 온 문화인들이 부산에 모여 창작을 이어갔고, 좁은 피란촌과 천막극장에서도 공연과 전시가 계속되었다. 절망 속에서도 예술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부산은 대한민국 현대 문화예술의 중요한 토대를 만들어낸 도시가 되었다.
부산오페라하우스는 바로 이러한 역사 위에 세워지는 문화공간이다. 단순히 해외 유명 공연을 소비하는 공간이 아니라, 부산이 지켜온 문화적 자산을 미래의 창작으로 이어가는 공간이어야 한다. 전쟁 속에서도 문화를 꽃피웠던 도시라면, 평화의 시대에는 세계로 문화와 예술을 수출하는 도시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해외 유명 극장의 공연을 초청하는 것은 어느 도시나 할 수 있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을 시민에게 선보이겠다는 취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첫 무대를 해외 유명 극장의 이름에 기대어야 하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진정 중요한 것은 부산만의 작품을 만들고, 부산의 예술가를 성장시키며, 부산의 이야기를 세계인의 감동으로 바꾸는 일이다.
개관공연은 바로 그 방향을 선언하는 자리여야 한다.
부산은 이미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부산시립교향악단은 국내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 가운데 하나이며,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연주력과 예술성을 갖추고 있다. 부산시립합창단과 지역 오페라단, 부산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와 성악가들 역시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실력이 아니라 이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제작 시스템과 무대이다. 부산오페라하우스는 바로 그 무대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프랑스가 루이 14세 시대부터 자국 예술인과 예술기관을 육성하고 보호했던 이유는 단순히 예술가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프랑스만의 음악과 오페라, 미술을 만들어 국가의 문화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프랑스가 세계 문화강국이 된 것도 오랜 시간 자국의 예술가와 예술기관을 중심으로 투자해 온 결과이다.
부산 역시 이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부산오페라하우스가 해외 유명 극장의 공연을 유치하는 데 만족하는 공연장이 될 것인가. 아니면 부산만의 레퍼토리를 만들고, 부산의 음악인을 키우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제작극장으로 성장할 것인가.
그 첫 단추는 개관공연에서 시작된다. 개관공연은 단 하루의 축제가 아니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부산오페라하우스가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지를 선언하는 첫 번째 문화정책이자 미래 세대에 남길 문화유산의 출발점이다. 공연장은 건물이 좋다고 명품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도시의 예술가가 성장하고, 그 도시만의 작품이 탄생하며, 세계인이 그것을 보기 위해 찾아올 때 비로소 명품 공연장이 된다.
부산이 진정한 해양수도를 꿈꾼다면, 바다를 통해 사람과 물류만 오가는 도시가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세계로 수출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첫 막은 그 미래를 여는 선언이어야 한다. 그 선언의 주인공은 해외의 명문 극장이 아니라 부산의 예술가들이어야 한다.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켜낸 최후의 보루였던 부산은 이제 대한민국 문화의 최전선이 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자유를 지켜낸 도시였다면, 앞으로는 문화를 창조하고 세계로 전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부산오페라하우스는 그 역사적 사명을 실현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