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郞豈是牽牛·랑기시견우

대야를 거울 삼아 세수를 하고(洗面盆爲鏡·세면분위경) / 맹물을 머릿기름 삼아 빗질합니다.(梳頭水作油·소두수작유) / 저는 직녀가 아닌데(妾身非織女·첩신비직녀) / 제 남편이 어찌 견우이겠습니까?(郞豈是牽牛·랑기시견우)

위 시는 허난설헌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여류시인 이옥봉(李玉峯·생몰년 미상)의 작품 ‘남을 위해 억울함을 하소연하며(爲人訟寃·위인송원)’로, 이옥봉의 남편인 운강(雲江) 조원(趙瑗·1544~1595)의 문집인 ‘가림세고(嘉林世稿)’에 부록으로 붙어있다.

이옥봉의 이웃 여자가 ‘남편이 소도둑으로 몰려 잡혀갔다’며 찾아왔다. 그녀는 이옥봉에게 “운강 조원에게 부탁하여 억울함을 풀어줄 글을 써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옥봉은 남편에게 써 달라고는 못 하고 ,자신이 글을 써 줬다. 위 시는 글의 말미에 붙여놓은 것이다.

시는 ‘저는 평범한 여자일 뿐 직녀가 아닙니다. 그러니 제 남편이 견우일 리가 없습니다’고 표현함으로써, ‘남편은 소를 훔치지 않았다’는 말을 에둘러 강조한 것이다.

관에서는 시의 탁월함에 감동하여 이웃 여자의 남편을 풀어주고, 조원을 방문하여 “시가 좋더라”고 말하였다. 이옥봉이 써준 시가 관가의 사법 판결에 영향을 미치고, 조정에서도 알게 된 것이다. 조원은 이옥봉을 불러 행실을 크게 꾸짖고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당시 사회 분위기로는 여성이 시를 짓는 것도 죄가 되는데, 더 나아가 나랏일에까지 간여했기 때문이었다. 이 일로 이옥봉은 남편과 헤어져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임진왜란 때 죽었다.

이옥봉은 양녕대군의 고손자인 자운(子雲) 이봉(李逢·1526~?)의 서녀로, 어려서부터 부친에게 글과 시를 배웠다. 조원의 고손자인 조정만(趙正萬)이 남긴 ‘이옥봉행적’에 그녀에 대한 행적이 일부 남아 있다. 이옥봉의 시집 한 권이 있었다고 하나 현전하지는 않고, 시 32편이 수록된 ‘옥봉집(玉峰集)’ 1권만이 ‘가림세고’의 부록으로 전한다. 그녀의 시 가운데 남편인 조원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시가 많다.

목압서사에서 조선 시대 여류시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옥봉의 삶과 시를 소개하였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