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에서 영화만 보고 가실 건가요?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해운대 일대는 지역 미술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영화의전당에서 차로 5분 거리에 부산시립미술관과 이우환공간이 자리해 있고, 메가박스 해운대 상영관과 비프빌리지가 있는 해운대해수욕장과 가까운 달맞이고개에는 수십 개의 갤러리가 매일 무료로 관람객을 맞고 있다. 최근에는 또 다른 '핫 플레이스'가 영화의전당 앞을 흐르는 수영강 건너에 들어섰다. 고려제강 옛 수영공장을 리노베이션 한 복합문화공간 'F1963'이다. 이곳에서는 오는 11월 30일까지 2년에 한 번 열리는 미술축제 '부산비엔날레'가 개최된다. 여러 전시 중 결코 후회하지 않을 2곳을 소개한다. 영화를 본 뒤 혹은 영화와 영화 사이의 자투리 시간까지 알차게 활용하고 싶은 시네필이라면 놓치지 말 것!

부산비엔날레가 열리는 부산시립미술관에 전시된 일본작가 에노키 츄의 'RPM1200'은 지진으로 작품 일부가 쓰러져 작가의 제작의도가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국제신문 DB

■2016 부산비엔날레

- 시립미술관·F1963 두 곳서 진행
- 日 지진 형상화 금속 조형물 등
- 한중일 실험미술 역사 한눈에

지난 9월 3일 개막한 부산비엔날레는 F1963(수영구 망미동)과 부산시립미술관(해운대구 우동) 두 곳에서 열리고 있다.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을 주제로 23개국 121명(팀) 320작품을 소개한다. 예년에 본전시-특별전시로 나눠 진행하던 행사를 프로젝트1, 프로젝트2, 프로젝트3(학술·공연)으로 분류해 각 프로젝트를 유기적으로 엮은 점이 특징이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프로젝트1은 'an/other avant-garde china-japan-korea'를 주제로 1960~80년대 한국 중국 일본에서 진행된 자생적 실험미술인 아방가르드를 조망한다. 한중일 실험미술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국내는 물론 아시아, 세계미술사에서 처음으로 시도돼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일본작가 에노키 츄(72)의 'RPM1200'은 꼭 한 번 감상해보자. 최근 한반도를 강타한 지진의 영향으로 작품이 일부 훼손되면서 오히려 주제의식이 선명해진 독특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금속 조형물 수백 개를 용접하지 않고 세운 설치작품이다. 작가가 1995년 한신대지진에서 영감을 받아 일견 단단해 보이지만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도시의 속성을 형상화했다. 그런데 지난 9월 12일 발생한 지진으로 작품 60%가 쓰러져 작가의 제작 의도가 더욱 뚜렷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전시장에 가면 지진으로 쓰러진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F1963에 전시된 네덜란드 작가 폴케르트 드 융의 'Early Years' 연합뉴스

F1963에서 열리는 프로젝트2는 '혼혈하는…'을 주제로 윤재갑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이 기획했다. 이 전시는 전통과 현대, 인간과 자연, 동양과 서양, 아날로그와 디지털, 자본과 기술의 혼혈로 만들어진 현시대를 성찰하고 모든 가능성을 논의하는 자리이다. 장난감 총으로 작품에 달려있는 풍선을 쏘아 본다거나 마이크에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의 정의를 말해보는 등 작가와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이 많아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편견을 조금은 깰 수 있다.

F1963은 공간 그 자체가 전국적인 화젯거리이다. 고려제강이 130억 원을 들여 리노베이션한 이곳은 공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채 문화공간으로 변신해 현대미술을 전시하기에 더없이 적당하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내부에 입점한 커피점 테라로사도 앤티크한 인테리어와 맛있는 커피로 벌써 입소문이 자자하다. 주말엔 주문까지 30분이 걸릴 정도로 부산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F1963은 영화의전당에서 바로 가는 대중교통이 없는 점이 아쉽지만 택시를 이용하면 10분 내로 도착하는 거리다. 부산시립미술관과 도시철도 센텀시티역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토요일 밤 9시까지. 월요일 휴관. 입장료 일반 1만2000원, 청소년 6000원, 어린이 4000원.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이우환공간의 앞뜰에 신작(오른쪽)이 설치돼 있다. 국제신문 DB

■세계적 명성 이우환공간

- 신작 '관계항-안과 밖의 공간' 등
- 이우환 선생 작품 총 24점 전시

이우환 선생은 더 말이 필요없는 세계적인 작가다. 최근 위작 스캔들은 결과야 두고 봐야겠지만, 미술시장에서 그의 작품이 차지하는 위상을 대중에게 역으로 알린 계기가 됐다. 그런데 한 점에 수십억 원에 달하는 그의 작품 24점이 부산에 있다는 걸 아는 시네필들은 얼마나 될까.

부산시립미술관에는 이우환공간이 별관으로 조성돼 있다. 선생이 직접 설계한 이곳에는 조각과 회화 등 24점이 있어 그의 작품세계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지난 9월 3일 이우환 선생이 이우환공간 1주년을 맞아 앞뜰에 기증한 신작 '관계항-안과 밖의 공간'을 추천한다. 신작은 폭 6m, 높이 2.3m의 안쪽을 향해 약간 구부러진 스테인리스 스틸 판이 양쪽에서 마주보고, 스틸 판 사이사이에 두 개의 자연석이 마주보고 있는 형상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판은 거울처럼 반짝이며 반사작용을 하기 때문에 작품에 다가서는 관객이 비친다. 관객은 스틸 판과의 거리에 따라 자신의 모습이 상하좌우로 변모하는 상호작용을 체험할 수 있다.

전시장 내부는 입장료가 있지만 앞뜰 작품은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월요일 휴관. 부산시민일 경우 일반 2000원, 어린이·청소년 1000원. 부산시민이 아니면 일반 3000원, 어린이·청소년 2000원. 도슨트 문의 (051)740-4251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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