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의혹과 관련해 정치권의 인적 쇄신 요구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청와대 참모진도 일괄 사표를 낼지를 두고 결론을 내지 못했다. 국정 붕괴 상황에서도 즉각적인 수습 방안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청와대의 국정 시스템이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이날 새누리당으로부터 청와대 수석 참모진과 내각의 인적 쇄신 요청을 받고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의 잘못으로 참모들을 내칠 수 없다는 뜻을 보였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또 여야가 사실상 합의한 특검에 대해서도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여권 일각에서 제기하는 박 대통령의 탈당 요구도 수용할 수 없다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전언이다. 

이 같은 결론은 박 대통령이 지난 25일 대국민 사과를 발표한 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가닥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이 회의에서 정치권의 쇄신 요구를 수용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참모진 퇴진이나 박 대통령의 탈당 등은 정부가 사실상 식물상태에 빠진다는 논리가 맞서는 바람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는 청와대가 내부 시스템이 아니라 전적으로 박 대통령의 결단에 의존하는 의사결정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정 최고기관인 청와대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번 사태가 터진 이후 청와대 참모진의 대응은 국정 농단의 주범으로 지목된 최 씨의 실체조차 몰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이 비서실장은 이날 국회 예결특위에서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언론을 통해 알았지만, 이렇게 문제가 됐다는 것은 최근에야 알았다"고 털어놨다. 비서실이 정상적으로 가동됐다면 불가능한 얘기다.

참모진의 안일한 상황 인식도 청와대 시스템 붕괴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연설문 유출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데 대해 "언론들이 분석해 놓은 것을 봤는데 법 위반이 아니라는 분석이 많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김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