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무엇을 기억하는가 <7> 길 위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보다
'번갯불' 애칭 노면전차, 50여 년 시민의 발 역할![]() |
1954년 부산 충무동 일대를 지나고 있는 노면전차. 한 여인이 짐을 깔고 앉은 채 반대쪽으로 가는 전차를 기다리고 있다. 강석환 용두산공원 부산타워 대표 제공 |
- 6·25 전쟁 거치면서 급격히 늘어난 인구, 교통난 해소에 기여
- 버스 대중교통되며 1968년 역사 속으로
- 대신동 종점터 등 옛 흔적 곳곳 산재
- 동아대 부민캠퍼스, 전차 1량 보존 전시…아련한 추억 달래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독일 프라이부르크, 스페인 빌바오, 일본 나가사키 같은 세계적인 관광도시에 가면 노면전차(Tram)가 시가지를 누빈다. 불과 40여 년 전 부산에도 노면전차가 다녔지만 버스와 자동차, 도시철도(지하철)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일제 강점기 노면전차가 운행된 도시는 부산 서울 평양 등 국내에서 3곳뿐이었다. 부산은 그만큼 '모던'한 도시였다.
■'번갯불'로 움직인 노면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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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 부민캠퍼스 앞에 전시된 미국산 노면전차를 학생들이 구경하고 있다. 국제신문DB |
'이 자리는 부산의 근대화기 50여 년 동안 시민들의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이용되어 추억과 애환이 깃들어 있는 전차 종점이 있었던 곳입니다. 부산에서는 1910년 부산진~동래온천장 구간에 처음으로 운행을 시작하였고 1928년엔 부산공설운동장이 조성됨에 따라 대신동까지 전차선로가 연장되어 이곳에 전차 종점이 들어섰습니다. 당시 운행 구간은 운동장~시청 앞~부산진역 앞~서면을 지나 동래온천장으로 가는 선로와 운동장~충무동~시청 앞에서 영도 남항동 종점으로 가는 2개의 선로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전차를 '번갯불을 잡아서 타고 다닌다'고 해서 구경꾼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나 대중교통 수단이 점차 버스로 전환되면서 1968년 5월 20일 전차 운행이 중단되었고 그 때 운행되던 전차 1량이 동아대학교 구덕캠퍼스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시청 앞이라는 옛 부산시청, 즉 현재의 롯데백화점 광복점을 말한다. 전기가 처음 보급될 당시여서 '번갯불을 잡아서 타고 다닌다'는 표현이 흥미롭다.
■중앙로에 노면전차가 다녔다
노면전차가 다닌 길은 다름 아니라 현재 부산에서 가장 혼잡한 간선로인 중앙로다. 일제 강점기 20만여 명의 발이 되었던 전차는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귀환동포와 피란민의 증가로 인구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산의 교통난 해소에 크게 이바지했다.
1963년 직할시 승격과 함께 노동인구의 유입, 부산항을 통한 수출입 물동량의 증가로 기존 전차는 도로 확장에 걸림돌로 작용해 1968년 사라지게 됐다. 원로 소설가 최해군 선생은 "일본이 1937년에 약 30년 후인 1965년 인구 40만 명 수용 규모의 도시계획을 수립하고 간선도로와 시가지 중심로에 전차를 운행했다"면서 "1965년 부산 인구는 실제 141만 명에 달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고 설명했다.
■방치된 전차종점 기념 표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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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전차종점 기념비 |
늦었지만 다행히 구청과 대학이 전차에 관한 기억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서구청은 대신동 전차 종점터 인근에 마지막까지 운행했던 전차의 모형을 본떠 만든 버스정류소를 세워 눈길을 끌고 있다. 동아대는 지난해 7월 구덕캠퍼스에 보관 중이던 전차를 복원, 부민캠퍼스 앞으로 옮겨 시민에게 공개했다. 동아대 측은 "길이 14m, 너비 2.3m, 높이 3.2m의 이 전차는 미국 신시내티 차량회사에서 1927년 제작해 애틀랜타에서 운행하다가 1952년 무상 원조로 부산에 들어왔다"고 말했다.■터널 많은 부산, 우회 모르는 시민
돌아가던 길을 뚫듯이 부산은 산과 바다, 강 모든 곳에 길을 만들었다. 산지 면적이 60%에 달해 산을 빙 둘러가야 했던 곳에 터널을 뚫어 지역 간 거리를 줄였다. 낙동강을 연결해 경남과의 생활권을 확대했다.
2002년 12월에는 수영로와 광안로의 만성적인 교통 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총연장 7.42㎞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남천동 49호 광장~해운대 센텀시티)를 완공했다. 광안대교는 국내 최대 해상 복층 교량으로 부산의 랜드마크가 됐다.
박재환 부산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부산은 전국의 도시 중 가장 많은 터널과 유료도로가 있고, 이는 부산 사람의 성격이 우회할 줄 모르고 직설적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 김해공항 생기기 전 수영비행장 이용, 1985년 7월 17일엔 도시철도시대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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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영강변의 수영비행장. 이곳은 현재 센텀시티로 변했다. |
부산 수영강변에 자리잡은 수영비행장은 1940년 군사비행장으로 건설돼 1948년부터 민항기가 운항됐다. 6·25전쟁 당시에는 유엔군 군용비행장(K-9)으로 사용됐다. 1976년 지금의 부산 강서구 대저동 김해공항으로 이전하면서 폐쇄됐다. 이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던 추억을 간직한 60대 이상의 세대도 적지 않다. 옛 수영비행장 터에는 122만1000㎡(37만 평)의 센텀시티가 조성돼 벡스코, 영화의전당, 신세계백화점 등이 들어서는 등 '딴 세상'으로 변했다.
1985년 7월 17일 노포에서 범내골까지 부산도시철도(지하철) 1호선 1단계 구간(16.2㎞)이 개통되면서 지하철 시대가 열렸다. 지난해에는 안평~미남 4호선에 이어 부산~김해 경전철까지 개통됐다. 지하철 공사로 말미암아 서면로터리에 세워졌던 부산의 상징 부산탑이 1981년 철거됐다.
부산시 시사편찬실 홍연진 상임위원은 "부산탑이 있던 시절 부산의 모든 길은 서면으로 통했다"며 "초보 운전자들이 서면로터리를 빠져나가지 못해 뱅글뱅글 돌았던 추억이 있다"고 말했다. 1963년 1월 직할시 승격을 기념해 23m 높이로 제작된 탑의 원형은 사라졌지만 남녀 청동상과 기념비석은 부산박물관 야외에 전시돼 있다.
# 1965년 북구 차량통행 만덕고갯길 개통, 구포~동래 연결… 터널 생기며 용도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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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개통 기념비 주위에는 개통이 갖는 의미를 알 수 있는 어떠한 설명문도 없고, 금정산 방향으로 등산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움직임만 있을 뿐이다.
전통적으로 부산은 산이 풍부해 일명 '富山'이라고도 불린다. 이 고갯길로 차량이 다니기 전에는 구포에서 동래로 가는 길은 서면을 통하는 우회도로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 도로가 개통됐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산세가 높고 길이 험해 이동이 힘들었던 북구와 동래구를 이어주던 만덕고갯길은 1973년 너비 9m, 길이 814m의 제1 만덕터널이 뚫리면서 용도를 상실하게 됐다. 이어 제2 만덕터널이 1988년 제1 만덕터널의 교통량을 분산하기 위해 완공됐다. 김희재 교수
공동취재= 김희재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
공동기획= 국제신문·대안사회를 위한 일상생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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