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83> 황우상 부산가곡협회장
은행맨도 교수도 성공 비결은 ‘영업’…음악가로 제3의 삶
고영삼 인생이모작포럼 공동대표
| 2026.06.09 18:34
- 은행지점장 맡아 영업활동 왕성
- 야간대학에서 많은 지식도 쌓아
- 명퇴 후 대학 강의 맡는 바탕 돼
- 2004년 접한 가곡 ‘2막 정체성’
- 준비된 삶에는 새로운 길 열려
- 다양한 리스크 속 기회 찾기를
◇ 황우상의 인생이모작 귀띔
- 위기는 기회를 물고 온다. 꾸준히 하라, 뛰면서 생각하라.
금융계 은퇴자들의 인생 2막은 어떨까. 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니 퇴직 후에도 넉넉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틀 짜인 시스템 안에서 안정성과 보수적 판단을 중시해 온 탓에, 퇴직 후의 불확실한 세계 앞에서는 오히려 주춤거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경제활동도 기대보다 뒤처진다. 그러나 이번에 만난 이는 달랐다. 은행 지점장을 끝으로 금융계를 떠났지만, 젊은 시절보다 더 활발하게 ‘현역’으로 뛰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날은 마침 그가 부산가곡협회장으로 취임한 날이었다.
-부산가곡협회는 어떤 조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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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해운대문화회관에서 한국가곡협회장으로 취임한 황우상 회장이 가곡 ‘시간에 기대어(작사·작곡 최진)’를 부르고 있다. 본인 제공 |
이번에 만난 이는 황우상(72) 부산가곡협회장이다. 그는 금융맨으로 출발해 IMF 외환위기 무렵 퇴직한 뒤 대학 강단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금융교육자와 가곡인으로 또 다른 현역을 살고 있다. 금융계의 일반 퇴직자와 결이 많이 다른 그의 인생비법을 들어보자.
-젊은 시절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셨다고요.
▶경남상고를 졸업하고 농협중앙회에 입사했습니다. 이후 BNK 경남은행을 거쳐 현재 국민은행에 합병된 동남은행에서 일했고, 38세에 지점장으로 발탁됐습니다. 그때는 은행장을 인생 목표로 삼고서 치열하게 살았어요. 국무총리상도 받았고, 3년 연속 최우수 지점장으로 선정되기도 했죠.
-성과의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영업활동을 솔선수범했습니다. 저는 내근도 챙기면서도 외부 영업활동에 더 치중했습니다. 당시엔 가만히 있어도 고객이 오던 시절이었지만, 저는 늘 밖으로 나갔던 것이죠. 동아대병원 내 지점장으로 있을 때는 병원 고객만 관리하지 않고, 주변 고급 주택가의 초인종을 하나씩 눌렀습니다. 반응이 좋아 그만큼 고객도 많이 확보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현장 영업’이었고, 당시 기준으로는 꽤 저돌적인 방식이었지요. “멀리서 봐도 눈빛이 나는 지점장”으로 알려졌습니다.
-영업에 독특한 철학이 있었군요.
▶저는 영업이 삶의 기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은행 상품을 파는 일이나, 가전제품을 파는 일이나,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일도 결국 같은 원리에 있습니다. 거절요? 제가 준 명함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죠. 그래도 다음 날 또 찾아갑니다.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대를 이해하게 되고, 마음의 틈도 찾게 됩니다. 그 성취감은 엄청납니다.
IBM을 키운 토머스 J. 왓슨은 “성공률을 높이고 싶다면 실패율을 두 배로 높이라”고 했다. 영업의 세계에서 실패란 대개 거절이다. 그러나 그는 거절을 문이 완전히 닫혔다는 뜻으로 보지 않았다. 아직 상대의 필요를 충분히 읽지 못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물러서지 않았다. 거절의 벽 뒤에 숨어 있는 틈을 찾아 관계를 만들었다.
-그런데 지점장 생활을 7년 정도 하고 금융계를 떠나셨다고요.
▶대학 강단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제 안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IMF 구조조정기 무렵 사표를 냈습니다. 은행에서는 나가지 말라며 부행장 승진 이야기도 했지만 결국 결단했습니다. 당시 40대 중반이었는데, 약간 두렵기는 했지만 완전히 막막하지는 않았습니다.
-박사 학위가 있었기에 가능했겠죠.
▶저는 늘 공부했습니다. 낮에는 은행에서 영업하고, 밤에는 동아대 야간대학에서 공업경영학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석사와 박사 과정까지 이어갔지요. 당시 은행 분위기에서는 공부한다는 말을 드러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했습니다. 대학원 시절에는 등산도, 친구 모임도 끊고 교수님 연구실에서 쪽잠을 자며 공부했습니다. 돌아보면 40대 초반까지는 낮엔 은행원, 밤엔 학생으로 산 셈입니다. 훗날 대학 강단으로 건너갈 수 있었던 가장 큰 다리가 바로 그 공부였습니다.
그의 말은 인생이모작의 핵심을 찌른다. 변화의 시기는 누구에게나 온다. 하지만 준비 없는 전환은 삶을 주저앉히지만, 준비된 사람에게는 성장의 계기가 된다. 황 회장에게 명퇴는 오래 준비해 둔 공부와 금융 경험을 대학 강단으로 옮겨 싣는 계기였다. 결국 변화를 기회의 계기로 바꾸는 힘은 오래전부터 쌓아온 준비의 두께였다.
-대학 강단에 선 뒤엔 순탄했습니까.
▶박사 학위를 공부한 것은 두고두고 가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정규 교수가 아니어서 수입이 형편없었고, 교수 세계의 논리도 매우 복잡했습니다. 그래서 한때 여의도의 증권회사 지점장으로 간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학이 제 활동 폭을 더 넓혀준다고 판단해 다시 돌아왔고, 동의대를 거쳐 한국해양대에서 정년까지 활동했습니다.
-인생 전환이 그림처럼 쉽지는 않았군요.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한국해양대에 갔을 때 고민했습니다. 유명 대학 출신 교수들 속에서 그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했습니다. 답은 영업이었습니다. 기업체 사장님들과 중견 직원들을 대학으로 모셔 공부하게 하는 일은 제가 그들보다 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고경영자과정을 맡겨 달라고 했고, 결국 능력을 인정받아 약 10년 동안 담당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사람은 퇴직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젊은 날 몸에 밴 능력을 새로운 무대에 맞게 바꾸는 것이다. 은행에서 익힌 그의 영업력은 대학에서 기업인을 모으는 힘이 됐고, 현장에서 쌓은 금융 지식은 강의와 컨설팅의 큰 자산이 됐다.
-퇴직 후 자산도 더 많이 늘렸다고요.
▶일모작 때보다 훨씬 많이 벌었습니다. 은행에서 익힌 금융지식, 영업력, 재테크 감각을 사회인 대상 특강 시장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공업경영학을 전공하고 은행과 증권회사를 오가며 쌓은 경험이 특강과 컨설팅 시장에서 통하더군요. 저는 그 수입을 다시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운용으로 굴렸습니다. 월급에만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 지식과 영업력으로 돈을 벌고 자산이 다시 수입을 만드는 구조를 만든 셈입니다.
그는 지금도 매일 두 종류의 경제신문을 숙독한다. 주식, 금리, 환율, 세제 변화까지 챙긴다. 또한 신라대에서 경영학을 강의하는 한편 국제금융연구원을 설립해 기업체에 경영 자문을 하거나 은퇴자들에게 돈 버는 기술만이 아니라, 돈을 지키고 쓰고 불리는 법까지 가르치고 있다. 이를 인정받아 2024년에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상’을 받기도 했다.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셨습니까.
▶2004년쯤 금융 특강을 하러 갔다가 강의를 듣는 분의 소개로 우연히 시작했습니다. 하다 보니 조금씩 실력이 늘었고,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지금은 일주일에 사흘 정도 노래 공부와 연습을 합니다. 독창회, 2인·3인 음악회, 하우스 콘서트까지 합하면 무대에 선 것도 100회가 넘습니다. 가곡은 뇌 활동에도 좋고 사회적 유대감도 키워줍니다. 이제 노래는 인생 2막의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곡의 맥이 끊길까 걱정해 직접 작사·작곡한 가곡을 무대에 올리고 계신 강석우 방송인도 부산에 모셔서 협력하려고 합니다.
-교수님의 인생작법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요.
▶꾸준하게 준비하고 매진하면 결과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꼭 무엇을 이루겠다고 덤빈 것보다, 성실하게 즐기며 하다 보니 시간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과정이 중요합니다. 저는 낮엔 영업, 밤엔 공부하는 생활을 오래 했습니다. 퇴직 후에는 자산 운용 기술을 익혔고, 음악도 꾸준히 했습니다. 그리고 늘 뛰면서 생각했습니다. 인생 2막이란 갑자기 다른 삶을 덧붙이는 일이 아닙니다. 오래 쌓아온 자기 능력을 새로운 무대에서 다시 피워내는 일입니다.
-금융기관 출신들이 은퇴 후 오히려 잘 안 풀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금융기관 사람들은 돈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너무 안전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역 때는 그것이 고객에게 신뢰를 주는 힘입니다. 하지만 퇴직 후에는 평생 굳어진 그 자세가 오히려 자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바깥세상은 훨씬 유동적입니다.
-후배 금융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우선 현업에 있을 때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경제 공부든 학위 공부든, 그것이 훗날 든든한 배경이 됩니다. 또 퇴직 후에는 안정된 시스템과 보수적 판단에만 고착되면 안 됩니다. 사회에 나오면 사업도, 투자도, 인간관계도 모두 리스크가 있습니다. 리스크를 전혀 안으려 하지 않으면 새로운 일은 시작하기 어렵습니다. 위험과 위기 속에서 오히려 기회를 찾아내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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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후원: BNK 금융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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