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리 복잡한 지능범죄 급증…“공부해 수사할 엄두 안 난다”
준비 안 된 '경찰시대' <1> 일복 터진 초보 수사관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 2026.10.0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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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당 수사시간 10년새 3배 ↑
- 수사자격 반납도 해마다 증가
- 넘쳐나는 일더미, 초임에 몰려
- 상사 지휘 역량 수사품질 좌우
- 조직 문화도 노하우 공유 꺼려
통상 사기·횡령·배임과 같은 경제 사건은 ‘지능범죄’로 불린다. 지식이나 기술·언변으로 사람을 속여 남의 돈을 가로채는 범죄다. 민생 피해로 직결되는 데다 발생도 잦다. 2024년 기준 경찰청 전체 사건 중 31.9%가 지능범죄로, 발생 빈도 1위다. 5억 원 이상 거액 범죄에 해당하는 특정경제범죄 사건(6.6%)까지 고려하면 수치는 38.5%까지 오른다.
민생 최일선을 지키는 경찰로서는 경제 범죄에 공을 들여야만 한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도저히 공을 들일 수 없는 구조가 날이 갈수록 고착화한다는 점이다. 일은 폭증했고, 수사관은 지쳤으며, 초보 수사관을 키워 줄 체계는 부재에 가깝다. 사실상 어떤 상사를 만나 가르침을 받느냐에 따라 수사관 역량이 결정된다. ‘일복’과 ‘인복’이 조화하는 천운이 따르지 않는 이상 역량 향상은 요원한 셈이다. 법조계는 운복에 맡겨진 구조부터 바꿔나가야 ‘경찰 시대’에 희망이 있다고 진단한다.
■‘일복’ 터질 대로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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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서 경제팀(현 통합수사팀)에서 근무했던 한 경찰관의 토로다. 열성을 갖고 수사에 나서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취지다.
1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부산의 수사경과(수사할 수 있는 자격) 보유자는 3173명이다. 이날 기준 수사부서 전체 현원은 2900명으로, 수사경과 보유자 규모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국에서는 수사경과 보유자 3만8471명 중 8301명(21.6%)이 비수사부서에서 일했다.
수사경과를 반납하는 경찰도 늘고 있다. 지난해 부산청 산하 경찰관 중 올해 수사경과 반납자는 36명이었다. 올해도 현재까지 40명가량이 반납했다. 전국의 반납·해제 건수는 2023년 968건, 2024년 1181건, 지난해 1201건이었다. 수치를 종합해볼 때, 수사 현장에서 뛰고 싶어 하는 경찰이 점차 줄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일복이 터져서’다. 처리해야 할 사건이 너무 많고, 사건 하나에 들여야 할 시간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여파다. 고소·고발 사건 거의 전부가 경찰서로 몰려가기 시작하면서 업무량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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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수사관의 동시 보유 사건은 평균 50건 안팎이다. 여러 사건의 조사 일정을 잡고 자료를 검토하는 동안 새 사건이 계속 배당된다. 구속 등 긴급한 사건을 우선 처리하다 보면 다른 사건의 검토와 초임자의 학습에 충분한 시간을 쏟기 어렵다.
지역 한 변호사는 “경제 사건은 수사 자체로 오래 걸리지만, 수사 결과도 법리적으로 납득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검찰청 폐지 여파가 가장 혹독하게 다가 올 영역이 바로 경제 사건일 것”이라며 “개정되는 형사소송법상 사건 처리 기한까지 강제되면서 수사 품질 저하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하소연했다.
넘쳐나는 일거리를 쳐내는 건 초임 수사관들이다. 정 연구관의 또 다른 보고서를 보면, 표본 조사 응답자 461명 중 경력 3년 미만이 과반인 54.9%에 이르렀다. 경제사건은 계약 관계와 거래 경위, 당시의 의사와 능력을 따져야 한다. 형법 외에 민사법과 각종 특별법, 판례까지 검토해야 하므로 초임자 스스로 송치·불송치 판단 근거를 따지기에는 부담이 크다.■‘인복’에 맡겨진 수사관 역량
경찰은 인력 보강을 해법으로 삼는다. 경찰청은 지난 8월 인력 운영 효율화 방안을 발표, 기동대 정원 1040명을 감축해 881명을 수사·감찰 등에 활용한다고 밝혔다. 통합수사팀에는 645명을 보강한다. 부산청도 하반기 인사 때 수사 인력 150명을 보강하는 한편 기동대 112명, 광역예방순찰대 14명을 줄인다.
그러나 법조계는 인력 증원과 수사 숙련도 향상은 무관하다고 본다. 수사 지휘와 교육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는 취지다. 현재 경찰 수사는 어느 팀장과 과장을 모시느냐, 혹은 어떤 수사관이 배당받느냐에 따라 수사 속도와 품질이 결정되는 구조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경찰은 2023년부터 ‘팀장 중심 수사체계’를 도입, 팀장이 사건 전반을 지휘·검토하도록 했다.
경찰 출신 한 변호사는 “조직 내부에는 수사 노하우를 공유하는 문화나 체계적으로 수사 스킬을 가르치는 체계가 사실상 없다. 알아서 공부하거나, 상급자가 가르쳐주는 수밖에 없다”면서도 “그렇다고 각 과·팀장의 지휘 역량에 기대 수사 품질을 높인다는 것도 허상에 가깝다. 같은 팀장이라도 성실도가 다르고, 현장 경험 없이 승진 심사로 팀장이 되거나 경력이 차서 자동으로 승진한 경우 등 여러 유형의 사람이 있어 복불복과 다름 없다”고 진단했다.
실제 경찰의 수사 역량 강화 제도는 2024년 전국으로 확대 도입된 ‘수사상담 오픈톡’ 외에 뚜렷한 것이 없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수사부서 과·팀장 지휘역량평가에서 ‘부적절’ 판정을 받은 인원이 338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이런 수사 환경이 형사사법체계의 공정성까지 위협할 여지도 있다. 수사관이 법리를 풀어나갈 내부 지원 체계가 약하다 보니, 결국 고액의 변호사를 선임해 정교한 법률 의견서를 제출하는 당사자에게 수사의 주도권이 넘어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여력이 없는 피의자나 피해자는 불이익을 받게 된다.
해당 변호사는 “실제 변호사 의견서 없이는 수사 방향을 정하지 않는 수사관을 종종 접한다”며 “똑똑한 수사관을 만나거나 사적 변호사를 선임한 사람만 혜택을 보고, 그렇지 못한 국민은 손해를 보는 구조는 공적 수사 기관의 본질에 어긋난다”고 질타했다. 수사관도, 사건 당사자도 행운 없이는 제대로 된 처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셈이다.
■“체계 갖추고 문화 바꿔야”
검찰은 경찰과 무엇이 달랐을까. 검찰이 법률 전문가 조직인 점을 제외하면, 수사기법을 공유하는 체계와 조직 문화가 꼽힌다. 검찰의 경우 대검찰청 연구관실을 통해 전국의 주요 판례와 쟁점, 사건 유형별 수사 포인트를 분석해 일선 검사들에게 공유해왔다. 사건 유형별로 확인할 사실과 조사 질문, 적용 법리를 제공하고 간부도 공통 자료로 검토한다. 덕분에 부임 연수가 낮은 검사도 중요 사건의 쟁점과 관련 판례를 숙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직 내 승진 경쟁 문화가 비교적 약하다는 설명도 나온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대부분이 같은 평검사인 검찰과 달리 경찰은 계급이 많고, 승진과 연결된 실적 경쟁이 치열하다. 이런 점이 동료에게 수사 노하우 공유를 꺼리게 만드는 것으로 본다”며 “검찰에서는 우수 사례를 공유하고, 어려운 사건을 해결한 검사에게 직접 조언을 구하는 문화가 있다. 조언에 응하지 않으면 조직에 융화되지 못한 사람으로 치부된다”고 전했다.
검사는 공판검사로서 재판에 참여하는 경험을 쌓는다는 점도 주효하다. 법정에서 어떤 증거와 법리가 유죄 인정으로 이어지는지 직접 확인하며 수사 감각을 키운다는 것이다. 경찰은 공소유지를 맡지 않아 같은 학습 기회를 얻기 어렵다.
경찰도 이런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경찰청이 지난 2월 작성한 ‘2025년 자체평가 결과보고서’는 신속성과 사건 처리량 중심의 평가에 비해 수사 완결성에 대한 평가·포상이 미흡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검경 결정이 다른 사건을 수사팀에 돌려보내 분석·교육하고, 이를 법원 판결까지 넓히는 방안도 개선 과제로 제시했다.
경찰을 지낸 또 다른 변호사는 “경찰에도 변호사 자격을 지닌 인력이 점점 늘고 있다. 이 같은 내부의 법률 전문 인력을 활용해 판례 분석이나 주요 사건 쟁점을 검토하는 기능을 가동해볼 법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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